문병기 경제부 기자
발전소와 송·변전 시설, 폐기물 처리장과 같은 소위 ‘기피시설’이 들어설 때 이 이론은 반대로 적용된다.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지역은 보상비를 받을 수 있지만 그 주변지역은 혐오시설로 인한 피해를 함께 입으면서 보상은 상대적으로 적은 탓이다. 이 때문에 기피시설 외곽지역 주민들은 정작 중심부 주민들에 비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기피시설을 짓는 정부나 공기업이 보상을 많이 해줄수록 외곽지역의 불만도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앞마을은 저만큼 보상을 받는데 왜 우리 마을은 못 받느냐”는 심리에서다. 혐오시설을 짓는 사업자들은 이를 두고 ‘도넛 딜레마’라고 말한다.
밀양 송전탑 공사가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의 극렬한 반대로 송전선로 건설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자 정부와 한국전력은 결국 지난달 이례적으로 각 가구에 400만 원의 개별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전례 없던 일이다. 이런 개별보상금을 포함해 500억 원이 넘는 보상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400만 원의 개별보상금은 한전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특별지원으로 밀양 외에 송전탑이 지나가는 다른 지역에는 지급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송전탑 건설을 마친 지역에서는 “우리만 바보가 됐다”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차라리 밀양 주민들이 끝까지 합의해주지 않아 송전탑을 못 쓰게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최근 만난 한전 고위 관계자 역시 “돌이켜보면 밀양 사태로 가장 미안한 사람들은 앞서 합의해준 지역 주민들”이라고 토로했다.
밀양 사태의 여파가 개별보상을 받지 못하는 밀양 주변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밀양 송전탑이 남긴 “버티면 더 얻는다”는 나쁜 선례는 앞으로 다른 발전소나 송·변전시설을 지을 때마다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불어나는 보상금은 전기요금에 반영돼 고스란히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의 미봉책이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그간 숱하게 경험했던 국책사업 갈등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아무쪼록 밀양 송전탑 사태가 정부와 한전이 원칙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