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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토털디자인… 공간-연기-안무-조명까지 꿰뚫어야”

입력 | 2013-10-15 03:00:00

파격적 음악극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진두지휘하는 서재형 연출




무대 위에 만든 원형 소극장 객석을 등지고 선 서재형 연출. 그는 “결말에서 홀로 떠나가는 오이디푸스의 뒷모습을 최대한 오래 보여 주기 위한 선택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살았지만 그로 인해 처참한 비극을 맞는 남자에 대한 연민을 극대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스르르. 천장에서 스피커가 내려온다. 요란한 천둥과 빗소리가 어두워진 무대 위로 무겁게 내려앉는 모습이 보인다.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해 아이를 낳은 오이디푸스 왕이 제 눈을 찔러 멀게 하고 떠나간 테베에 찾아든 해갈의 비다.

2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 무대공간은 이 음악극의 16번째 배우다. 얼핏 단출해 보이지만 불필요하게 덧댄 장식 없이 치밀하게 구성된 공간이 코러스 15명의 움직임에 섞여들며 이야기를 빚어낸다. 1100석 객석을 버리고 무대 위에 마련한 350석 규모의 작은 무대. 그 위에 놓인 여닫이문 4개, 피아노 4대, 나무의자 21개, 나무욕조 1개가 차례로 오이디푸스의 고단한 운명에 녹아든다.

11일 무대에서 만난 서재형 연출(43)은 “내게 연극은 이야기의 공간감에 대한 과제를 풀어내는 과정이다. 그 공간의 이미지는 배우의 연기만으로 완성할 수 없다”고 했다. “3개의 문은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한 ‘운명의 삼거리’를 표상한다. 허공에 붙들어 맨 4번째 문은 꿈속의 문이다. 꿈 장면에서만 사용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이끌어내 조합하는 작업도 큰 틀에서 보면 일종의 공간 디자인이다. 주어진 이야기에 적합한 형태로 배우들을 배치하고 움직임을 조율한다.”

―피아노는 왜 4대인가.

“원래 아이디어는 피아노 20대를 두 줄로 늘어놓고 각자의 피아노를 연주하던 배우들이 차례로 나서서 연기하는 형식이었다. 관객은 패션쇼 런웨이를 바라보듯 주변에 앉고. 실제 공간에 옮기면서 연주만 맡는 피아노 1대와 연기를 병행하는 3대를 나눠 배치하게 됐다. 공간 제약도 있었지만 연주자 겸 배우 20명을 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박해수) 외에는 모든 배우가 둘 이상의 역할을 연기하는 ‘코러스’다.

“소포클레스가 쓴 원형이 그렇다고 판단했다. 둥그런 무대 위에 오른 배우들이 시시때때 역할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을까. 머리에 그려둔 이야기의 이미지를 연습을 통해 만들다 보니 배우들의 연습량은 당연히 만만찮았다. 무대 위 배우가 많을수록 더 치밀하게 움직임을 계획해야 한다. 연기의 자율권이 지나치면 이야기를 전달하는 공간이 흐트러진다. 애드리브처럼 보이는 상황 거의 모두가 사전에 계획된 것이다.”

―무대와 조명 디자인도 직접 한다고 들었다.

“서른 살 넘어 조연출 할 때 집에 가만히 있기 민망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 4시간씩 닥치는 대로 읽다가 미술 책에 손이 갔다. 재미를 붙여 거의 매일 4년 정도 디자인, 가구, 산업디자인 책을 이것저것 찾아봤다. 공연 일로 외국에 가도 낮에는 미술관을 찾아다녔다. 설치미술 작품을 구경하다 보니 ‘아, 이런 데서 공연을 해야 하는데’ 생각이 들더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래서 그냥 시작했다.”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현장 작업자들이 불편해했다. ‘뭐야, 쟤? 연출이래. 왜 무대 만드는 데 와서 난리래.’ 수군거리는 소리 많이 들었다. 작업이 쌓여가면서 좀 괜찮아진 것 같다. 한국 공연계에는 정형화된 틀이 있다. 외국에는 공간, 의상, 안무처럼 이미지 관련 영역을 직접 책임지는 연출가가 적잖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아직 ‘이상한 사람’이다.”

―대본과 작사를 맡은 아내 한아름 작가가 임신 중이라 들었다. 축하한다.

“한 달 뒤 아빠가 된다. 걔가 삼수하면 난 일흔이다. 큰일 났다. 한 작가랑 세 작품 같이 하고 ‘평생 다시 보지 말자!’ 다투고 헤어졌는데, 어느 날 눈떠 보니 같이 살고 있더라. 대본 작업 때 내가 까칠하게 많이 지적하는 편인데…. 저작권은 작가 몫이다. 앞으론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수록 잘 써?’ 하면서 찌그러져 살아야겠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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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정 작곡. 박인배 임강희 이갑선 임철수 오찬우 김선표 김준오 등 출연. 5만원. 02-2005-0114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