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이 국민 신뢰 잃으면 법원은 ‘법치의 보루’ 될 수 없다판결이 국민에 미치는 영향 심대… 대한민국 정통성까지 흔들어판사(判事)가 판사(判死) 안되려면 사법부야말로 法의 지배 받아야
배인준 주필
재판의 힘은 국민의 신뢰에서 나온다. 법관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과 달리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에 더더욱 국민의 신뢰에 의존해야 한다. 판사(判事)를 판사(判死)로 비토하는 국민이 늘면 사법부는 더이상 ‘법의 지배’의 보루가 될 수 없다.
판사(判死) 법관(法棺) 같은 조어는 과하다 할지라도 최근의 몇몇 판결은 논란을 부를 만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대리투표 사건에 연루된 45명에 대해 “반드시 헌법이 규정한 보통·직접·평등·비밀 투표라는 선거의 4대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무죄를 선고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송경근 부장판사)의 판결이 그 하나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재판장 박관근 부장판사)의 두 판결도 그렇다. 불법 방북자의 김일성 시신 참배 부분에 대해 동방예의지국을 언급하며 무죄를 선고한 것과, 집회신고 범위를 벗어난 도로점거 시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 그것이다. 이들 판결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논평이 많지만 나는 차제에 법관의 기본 자세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사법부의 판결은 국민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판결들은 국내의 친북 종북세력은 물론이고 북한 도발집단에까지 힘을 실어주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부정해도 되는 것으로 오도(誤導)한다. 김일성은 민족 200만을 살상(殺傷)의 희생자로 만든 6·25 전범(戰犯)이다. 그 후의 반인륜(反人倫) 폭정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전범 참배에 동방예의지국을 결부시키는 것은 법상식에 맞지 않은 억지이다. 탈북자 이애란 박사는 “동방예의지국이니 (일본 전범들의 위패에 머리를 조아리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도 괜찮은가”라고 쏘아붙였다.
일부 세력은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따르기는커녕 진영(陣營)논리에 매몰된 판결로 국민의 건전한 법의식을 해치는 판사를 ‘국민판사’ 운운하며 옹호하고 영웅시까지 한다. 대한민국의 국기(國基)마저 흔드는 판사가 국민판사이면 대한민국은 도대체 누구의 나라,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법의 지배’의 본산인 국회에서 자행된 폭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사도 있었는데 이런 판사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법의 지배’의 파괴자나 다름없다. 불법시위 방조 판결도 다수 자유시민의 기본권 행복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대한민국에서 불법 도로점거 시위에 무죄가 선고될 때 미국에서는 22선(選)에 83세 고령인 집권당(민주당) 소속의 찰스 랭걸 의원이 합법시위 도중 폴리스라인을 넘어 도로를 잠깐 밟았다는 이유(도로 무단점거 혐의)로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팔을 등 뒤로 꺾인 채 수갑을 차야 했다.
사법부야말로 법관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할 곳이다. 법관(法官) 판사(判事)라면 법관(法棺) 판사(判死)로 희화화되는 것을 자성 자계(自戒)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