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드’ 현장 자문 의료진
MBC ‘메디컬 탑팀’에서 외과 의사로 나오는 정려원(왼쪽)이 피범벅이 돼 수술하는 연기를 하고 있다. 배우와 제작진은 더미(인체모형)의 절개 방법부터 피가 쏟아지는 양까지 자문 의사의 깨알 같은 조언을 받는다. 에이스토리 제공
요즘 서울 세브란스병원 앞에는 장거리 셔틀용 승합차가 상시 대기 중이다. 거의 매일 의료진 서너 명이 수술도구가 가득한 가방을 들고 승합차에 오른다. 목적지는 경기 안성시의 드라마 세트장. 촬영 중 의료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들은 MBC 수목드라마 ‘메디컬 탑팀’의 자문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이 병원 홍보 담당자는 “수술 및 진료 일정에 따라 자문의사가 바뀐다”면서 “주인공인 박태신(권상우)이 천재 의사로 나오기 때문에 담당 분야가 흉부외과, 심장외과를 넘나들고 대본 중에 피부과와 영상의학과 관련 내용도 나와서 자문의사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의학 드라마가 늘고 시청자의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자문단의 역할도 커졌다. 자문단이 하는 일은 대본 감수와 현장 자문 응대로 나뉜다. ‘메디컬 탑팀’의 경우 촬영 협조를 하는 세브란스병원 의사들이 두 가지를 대부분 맡고 있지만, 이달 초 종영한 KBS 월화드라마 ‘굿 닥터’는 분당차병원 소아외과가 대본 감수를 맡고 촬영장이 된 서울성모병원 의사들이 현장 자문 응대를 담당했다. 제작사 관계자는 “촬영 협조 병원이 정해지기 전에 대본 작업을 해야 할 경우 관련 분야 학회를 통해 자문의사를 먼저 구하다 보니 대본 감수와 현장 자문이 나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현장 자문단은 주로 수술 장면을 연출할 때 도움을 많이 준다. 대본에 설정된 상황에 맞춰 수술도구를 챙기고, 실제 촬영 때 수술도구를 놓는 위치를 점검한다. 배우들에게 수술 자세, 의학용어 발음법 같은 연기지도를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고난도 수술 장면은 대역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메디컬 탑팀’ 자문에 응하고 있는 이창영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손 씻기, 수술용 장갑을 끼는 법, 수술 때 메스 건네는 법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대본을 감수하는 의사들은 단순히 대본을 검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소재를 제공하거나 작가가 원하는 ‘극적인 질병’을 찾는 일도 맡는다. ‘굿 닥터’에서 대본 감수를 맡은 정수민 분당 차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드라마에서처럼 갑자기 진통을 느끼고 응급처치를 통해 빨리 효과를 보는 질병은 드물다. 제작진이 원하는 극적인 질병을 찾기 위해 해외 저널을 찾아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자문 의료진이 받는 대우는 어떨까. 해외 드라마의 경우 실제 의사가 대본의 집필에 참여하거나 고액의 자문료를 받지만 현재 한국에는 이런 시스템이 없다. 대부분의 자문의사들은 “병원 홍보를 위해” “흥미로운 경험 삼아” “취미 삼아” 드라마 자문에 응해 “차비나 식비 정도”의 자문료를 받는다. 한 드라마 자문의사는 “‘ER’ 같은 미국 의학드라마는 하버드 의대 출신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턴이 제작과 각본을 맡았다”며 “한국 드라마도 의학적인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