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실물 지표 훈풍 부는데… 기업-가계 체감경기는 꽁꽁
○ ‘바이 코리아’ 행진에도 쏠림 현상 가중
15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20.69포인트(1.02%) 상승한 2,040.96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4월 3일(2,049.28)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가 19개월째 이어지는 등 경제의 기초 체력이 튼튼한 한국을 믿고 외국인 투자가가 투자에 나선 결과다.
하지만 외국인이 사들인 종목을 보면 극심한 투자 쏠림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 순매수 행진을 한 33일 동안 외국인의 순매수액은 총 11조63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26.7%인 3조1077억 원이 삼성전자에 집중됐다.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외국인 순매수 상위 5개 종목에 대한 투자 금액은 7조317억 원으로 전체의 60.4%에 달했다.
기업평가 사이트 CEO스코어가 500대 상장기업 중 293개 기업의 상반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 삼성 등 상위 5개 그룹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1% 증가했지만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영업이익은 오히려 15.2% 줄었다.
○ 자금난에 기업 부실 위험 고조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더딘 사이 국내 기업들의 부도 위험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이 평가한 중소기업들의 4분기 신용위험지수는 31로 2분기(28)보다 나빠졌다. 대기업 신용위험지수 역시 같은 기간 6에서 9로 악화됐다.
기업들의 부도 위험이 높아진 가운데 동양그룹 사태 등이 터져 나오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15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23∼27일 하루 평균 9525억 원이던 회사채 거래량은 10월 7∼11일 5214억 원으로 2주 만에 45.3%나 감소했다.
이에 따라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기업인데도 투자자를 찾지 못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대기업 중공업 계열사는 만기가 다가오는 채권을 상환하기 위해 수천억 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하려다 투자자를 찾지 못해 결국 채권 발행을 포기하기도 했다.
특히 건설, 조선, 해운 등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입은 업종은 10월에만 1조2134억 원 규모의 채권 만기가 돌아올 예정이지만 마땅한 자금줄을 찾지 못해 상환 여부가 불투명하다.
남상구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과거와 달리 현재 채권시장에서는 우량 등급의 채권이 아니면 아예 발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 얼어붙은 체감 경기 당분간 이어질 듯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투자 활성화가 필요하지만 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투자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얼어붙은 체감 경기가 당분간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점이다. 내수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려면 소비가 늘어야 하지만 가계 부문의 회복세도 더디기는 마찬가지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과 가계의 체감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기업 자금난 해소와 과감한 규제 완화, 주택시장 활성화 대책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대외 여건이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 경기가 본격적인 회복세를 타기도 전에 다시 침체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기업 경기를 되살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문병기·손효림·신수정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