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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승호]합리적 존재의 ‘야성적 충동’

입력 | 2013-10-16 03:00:00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 사람 중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사람은 로버트 실러 교수다. 그가 조지 애컬로프 교수와 함께 쓴 책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은 2009년 2월 출간 즉시 세계 경제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았고, 그해 6월 국내에서도 번역 출판돼 지금까지 7쇄 3만3000부가 팔린 경제도서의 스테디셀러다.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존 M 케인스(1883∼1946)다. 그는 경기변동 원인을 설명하면서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는 기업가의 직감에 의존해 결정되며, 이 같은 투자의 불안정성 때문에 경기가 변동한다. …많은 경우 인간의 의지는 계산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야성적 충동의 결과다”(저서 ‘고용 이자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라고 주장했다. 이 책 속의 인간관은 그전까지 고전경제학이 가정해온 ‘합리적 존재’와는 거리가 멀다. 실러 교수는 야성적 인간관을 바탕으로 자산가격 거품에 대한 이론을 펼치며 2000년 미국의 정보기술(IT) 주가 붕괴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손이 팔씨름하고 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므로 자유방임하면 된다’는 애덤 스미스 학파와 ‘방임으로는 경기침체와 공황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정부의 개입, 즉 보이는 손(visible hand)이 필요하다’는 케인스 학파의 대립이다. 이성적 인간관과 야성적 인간관의 대립이다.

▷‘야성적 충동’의 공저자 애컬로프 역시 ‘경제적 선택은 완벽한 시장정보와 합리성을 바탕으로 결정된다’는 고전학파의 전제를 배척하고 정보 불균형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정보경제학을 개척한 공로로 2001년 노벨상을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스승이라 할 만한 케인스는 노벨상은커녕 변변한 상조차 받은 적이 없다. 세상이 그의 위대함을 알았을 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 ‘노벨상을 받으려면 수명이 길어야 한다’는 통설이 그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