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국적자로 살다가 연령이 18세 3개월이 되기 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선택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이 지난 5년간 1018명에 이른다. 병무청이 민주당 김광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50명 수준이던 국적포기 병역면제자가 꾸준히 늘어 지난해에는 374명이나 됐다. 세계화 시대에 부모의 해외근무나 유학 등으로 자녀들이 이중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중국적을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군복무가 의무인 국가에서 국민의 안보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중국적자는 대부분 사회 상류층의 자녀다. 합법적으로 외국에 몇 년씩 거주하며 자녀를 낳을 수 있는 사람들은 외교관을 비롯한 공직자나 상사 주재원, 대학교수 등이다. 부유층 가운데는 미국 원정출산을 통해 이중국적을 얻어내기도 한다. 현직 외교관 자녀들 가운데 130명이 복수 국적자라는 최근 외교부 자료만 해도 이중국적자의 신분을 짐작하게 한다. 유민봉 대통령국정기획수석비서관은 아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의무를 면제받은 공직자와 정부 산하기관 간부 가운데 가장 고위직이다.
유 수석의 아들은 18세가 되던 2003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수석이 되기 10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고위 공직자에게는 큰 흠이다. 한 군 원로는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에게 “청와대 수석비서관 아들의 병역면제를 평범한 국민들이 납득하겠느냐. 유 수석을 퇴진시키거나 유 수석이 아들을 군대에 보내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200여 개 항목에 이르는 고위 공직자 자가검증 리스트에는 자녀의 이중국적과 병역면제 여부를 묻는 항목이 있다. 유 수석이 아들의 병역면제 사실을 감췄는지, 사실을 제대로 밝혔는데도 그냥 넘어갔는지 규명해야 한다.
이중국적자의 병역 면제는 병역의무가 없는데도 자진해서 입대하는 외국 영주권자의 사례와 대비된다. 병무청이 2004년 외국 영주권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제도를 시행한 이후 지난해까지 입영자가 누적 1000명을 넘어섰다. 할 수만 있다면 병역의무를 피하려는 우리 사회 일부 지도층 인사나 그 아들들의 그릇된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