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와 알아보는 ‘나만의 코스 찾기와 운동법’
“여기도 뛰기에 딱 좋은데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회현동1가 남산공원의 소나무 숲을 지나던 유지성 선수는 이렇게 말했다. 트레일 러닝은 어디서건 자기만의 러닝 코스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사진은 유 선수가 소나무 숲 사이를 달리는 모습.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운동하기에 딱 좋은 날씨인데…. 실내 헬스클럽 말고 다른 데서 뛰고 싶다.’
‘아냐, 집 근처에 제대로 된 러닝 코스도 없는데.’
이런 고민에 빠진 사람이라면 ‘트레일 러닝(trail running)’을 대안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트레일 러닝은 등산로나 산길, 초원 등을 빠르게 걷거나 뛰는 아웃도어 활동을 말한다. 트레일 러닝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먼저 발달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아웃도어 재단에 따르면 미국에서 트레일 러닝을 즐기는 사람은 무려 4800만 명(2009년 기준)에 이른다.
요즘엔 국내에서 트레일 러닝을 즐기는 사람도 속속 늘고 있다.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가 후원하거나 주최하는 대회도 많이 생겼다.
트레일 러닝의 장점은 바로 정해진 길 위를 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길을 뛰는 즐거움에 있다. 마땅한 코스나 정해진 트랙이 없어도 운동하는 데 전혀 걱정이 없다. 동네 뒷산, 산책로만 있어도 충분하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레츠’가 국내 최고 수준의 오지 레이서이자 트레일 러닝 전문가인 유지성 선수(42)와 함께 ‘내 집 앞 트레일 러닝 코스 만들기’의 기본 원칙과 트레일 러닝 운동 방법을 알아봤다. 유 선수는 르까프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트레힐 런’(트레일 러닝과 힐링을 합친 말) 등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다.
유지성 선수는 자신이 운영하는 트레일러닝 동호희 ‘런 엑스 런’ 회원들과 정기적으로 트레일러닝 캠프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 8월 경북 경주시 신평동 주변에서 진행한 ‘아이 부럽지’ 행사에서 회원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르까프 제공
내 집 앞 트레일 러닝 코스 개척하기의 첫 단계는 일단 내 집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유 선수는 “집 근처를 계속 돌아다니며 여러 곳을 재조명해 보라”며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평범한 길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집 앞 길도 훌륭한 코스가 된다”고 말했다.
가장 재조명하기 쉬운 장소는 동네 뒷산, 공원, 논길, 비포장도로 등이다. 특히 낮은 산속의 작은 오솔길은 아주 좋은 ‘나만의 코스’다. 포장된 길과 포장되지 않은 길의 비중은 2 대 8에서 3 대 7 정도(일부 국제 대회에서 정해놓은 분류 기준)로 구성하면 좋다.
동네길의 재조명이 끝났다면 이제 코스의 길이를 정할 차례다. 코스 길이는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자유롭게 정하면 된다. 그 기준은 ‘시간’이다. 초보자의 경우 가볍게 조깅하는 느낌으로 30분∼1시간 정도를 뛰었을 때의 이동거리를 목표로 정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기분이 내키면 빠르게도 뛰어보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가볍게 걷기도 하면서 운동량을 조절하면 된다.
유 선수는 “평소에도 ‘전자 만보기’를 이용해 걷는 습관을 들여놓으면 좋다”고 말했다. 전자 만보기는 손목에 차는 형태의 러닝 보조용품이다. 스마트폰 앱과 무선으로 연결해 이동 거리, 시간, 열량 소모 등 각종 정보를 알려준다. 전자 만보기만 있다면 점심을 먹고 난 뒤나 휴식시간에 잠시 밖으로 나가 ‘어번 트레일(도심 트레일 러닝)’을 즐긴 다음 운동량을 측정해볼 수도 있다. 참고로 유 선수는 전자 만보기를 이용해 자신이 평소에도 시속 약 8km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확인한다고 한다.
“트레일 러닝은 즐기기 위해 하는 것이다. 특히 남들과 함께 하면 더욱 즐겁다.” 유지성 선수의 트레일 러닝 철학이다. 르까프 제공
유 선수는 “트레일 러닝을 준비할 때 옷과 장비를 빼놓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트레일 러닝의 핵심은 즐기는 데 있기 때문에 기능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에다 도심 또는 집 앞을 뛴다는 점에서 스타일도 일상복만큼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가을철 트레일 러닝 복장의 기본은 반팔이나 긴팔 속옷에 재킷을 겹쳐 입는 것이다. 속에 입는 옷은 땀 흡수가 잘되고 건조 기능이 뛰어난 것이 좋다. 재킷은 방수와 통풍이 잘되는 것이 적당하다. 배낭은 5∼10L 용량의 작은 것이 좋다. 배낭 속에는 구급약과 헤드랜턴, 초콜릿 같은 행동식, 물, 비상금 등만 간단하게 챙기면 된다. 여기에 날씨에 따라 모자와 고글 등도 넣는다.
▼ 포장도3 對비포장7 적당… 타이츠형 양말로 다리 보호 ▼
신발은 트레일 러닝 전용화를 선택하면 된다. 겨울용으로는 방수가 뛰어난 것을, 사계절용으로는 통풍 기능이 좋은 것을 고르면 된다. 최근 르까프, 스케쳐스, 살로몬아웃도어, 이젠벅 등 다양한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앞다퉈 트레일 러닝 전용 신발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운동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을 뛰거나 걸을 때다. 낮은 산길이나 가파른 길을 오를 때는 발 앞꿈치를 바닥에 먼저 디디면서 뛰어야 한다. 내리막길은 뛸 때와 걸을 때의 방법이 각각 다르다. 걸어서 이동할 때는 뒤꿈치를 먼저 딛는 편이 좋다. 뛸 때는 속도 조절이 될 수 있게 발로 바닥을 찍는다는 느낌으로 내려가야 한다.
“기록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기록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사라지곤 하더군요. … 저도 ‘기록’만 바라보고 달린 적이 있어요. 사막 레이싱에서 구간 1위로 들어온 적도 있었죠.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때는 앞 선수의 엉덩이를 본 기억밖에 없어요. 그 상황을 즐기지 못한 거죠.”
유 선수는 트레일 러닝을 할 때 ‘재미’와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신이 날 때는 뛰고, 힘이 들 때는 걸으면서 운동 자체를 즐기라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유 선수가 추천한 서울, 경기 지역의 ‘즐거운’ 트레일 러닝 코스를 소개한다. 이 코스를 직접 달려보는 것도 좋고, 이를 응용해 내 집 앞 코스를 개척해보는 것도 좋은 시도가 될 것이다.
▽경기 동두천시 왕방산 코스=7시간 이상이 걸리는 중급자 코스. 국제 MTB 대회가 열릴 만큼 길이 입체적이어서 색다른 재미를 준다. 평지로 시작해서 좁은 오솔길, 잘 닦인 비포장길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다.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철 경치가 좋다. 유 선수가 가장 추천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 서초구 원지동 ‘청계산’ 코스=청계골에서 시작해 매봉, 원터골 쉼터에 이르는 11km 구간이다. 남자는 3시간, 여자는 5시간가량 걸리는 길이다. 정상에 오르면 도심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어 성취감을 느끼기에는 제격. 평일에도 등산객과 러너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울 중구 회현동1가 ‘남산’ 코스=아스콘이 깔린 포장도로가 있어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좋은 코스다. 남산을 한 바퀴 돌면 총 거리가 15km가 넘을 정도로 길다. 초보들은 이 중 적당한 코스를 취사선택해 즐기면 된다. 특히 북측 순환로는 왕복거리가 6km 정도여서 초심자에게 적당하다고 한다. 꽃밭도 펼쳐져 있어 여성 러너들에게 인기가 많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하늘공원’ 코스=하늘공원은 오르막이 완만하고 비포장길이 많아 재미도 있고 훈련하기에 적당한 코스다. 최근 유 선수가 훈련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