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유라시아 국제협력 콘퍼런스… 국내 주요 연구원 원장 긴급좌담회
유라시아 협력을 주제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8일 열리는 국제 콘퍼런스에 앞서 국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원 원장들이 15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긴급 대담을 갖고 콘퍼런스의 의미를 분석했다. 뒤쪽은 서울광장과 서울시 신청사. 왼쪽부터 김경철 교통연구원 원장,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윤덕민 국립외교원 원장, 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원장, 최세균 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유라시아 시대’의 개념과 의미를 간략히 소개해 달라.
윤덕민 국립외교원 원장=한국은 세계 8위의 무역 국가로 발돋움했으나 남북 분단 등으로 유라시아에서 ‘섬’으로 남아 있다. 한국은 해양과 유라시아를 잇는 위치에 놓인 장점을 살려 교량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적극 추진하는 ‘동방 정책’으로 한국의 대륙 진출 기회도 늘어나고 한국의 역할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철 교통연구원 원장=한국이 대륙과 철도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도 ‘섬’이다. 하지만 불과 60여 년 전 분단되기 전만 해도 이어져 있었다. 이준 열사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세계평화회의에 갈 때 서울에서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거쳐 3개월가량 철도를 통해 갔다. 우리 마음속에는 ‘한반도는 대륙 국가’라는 꿈이 있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 구상도 유라시아 국가 간 공동 번영과 평화 정착에서 교통 물류 협력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원장=동북아 지역에는 ‘아시아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한중일 3국이 경제적으로 긴밀한 상호의존 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안보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역내 경제 통합이 뒤처져 있는 것을 말한다. 남북 간 대치가 한반도의 지정학적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윤 원장=동북아는 아직 ‘경열정랭(經熱政冷·경제적으로 열기, 정치 안보상 냉랭)’이다. 남북 분단과 중-일 갈등 등 외교 안보 요인 때문에 유라시아 전체는커녕 동북아에서만도 역내 협력에 대한 도전 요소가 많다. 하지만 현재 단일통화까지 사용하는 유럽도 석탄 철강 등 작은 분야의 협력부터 시작됐다. 이 같은 기능주의적 접근으로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와 농촌 분야 협력도 잘 안 되고 있다는데….
에너지 분야에서 동북아 국가들은 ‘아시아 프리미엄’을 물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중동에 대한 석유 수입 의존도가 높으면서도 아시아에서 에너지 거래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 좀 더 비싸게 구입하는 것이 ‘아시아 프리미엄’이다. 한중일이 협력하면 ‘바잉 파워(구매력협상에서 이점)’가 생길 수도 있다. 유럽에는 네덜란드에 거래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 정부가 여수 등에 대규모 가스 비축 기지를 구축하려고 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아시아 에너지 허브’를 지향하는 것이다.
최세균 농촌경제연구원 원장=한반도가 대륙과 연결되지 않아 ‘섬’으로 남은 문제점들을 지적했지만 농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유라시아에는 한국 중국 일본 등 최대 곡물 수입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곡물 수출국이 있지만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서로 협력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어떤 타개책들이 논의되고 있는지….
김 원장=유라시아의 협력은 철도와 가스관 연결, 에너지그리드 구축 등이 패키지로 추진될 때 시너지 효과가 커질 수 있다. 그리고 기능주의를 언급했는데 석탄 철강이 시초가 된 유럽과 달리 유라시아는 철도 가스관 협력이 단초가 될 수 있다. 어떤 계기로든 북한이 포함된 철도 및 가스관, 전력망 등이 구축되면 협력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지금은 유라시아 협력을 위한 여건이 성숙되어 있다. 최근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 구간의 철도가 연결됐다. 양국이 광궤와 표준궤 모두를 나란히 부설했다. 이는 그만큼 서로의 필요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북 3성 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중국도 시베리아에서 북한으로 연결되는 철도망의 연결을 반긴다. 한국은 북한을 지나온 철도가 속초 등으로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윤 원장=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에너지 관련 회의에서 러시아인들은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 등을 위해 북한에 압력을 넣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에너지 분야의 협력 필요성이 북한을 개방으로 이끄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일부 참석자는 한국 주도의 통일도 찬성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농업 분야의 협력도 상당히 잠재력이 높은 분야이지 않나.
최 원장=연해주에는 18만 ha의 경작지가 있지만 17만 ha는 휴경지로 남아 있다. 현재는 선교 단체를 중심으로 북한에 지원할 식량을 생산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소규모 농업만이 진출해 있다. 앞으로 러시아의 토지에 한국의 첨단 농업 기술이 진출해 북한의 노동력으로 농사를 짓게 되면 북한의 취업 및 식량난 해결은 물론이고 한반도 안보 환경 개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한다.
김 원장=북한을 통과하는 한반도 종단 철도도 건설 등에 북한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고, 통과료가 보장되는 등 북한에도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최 원장=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중국이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20만 ha의 땅을 20년간 임차했다. 러시아에는 국제규범에 맞지 않는 제도와 관행 등 리스크가 있지만 유라시아 협력을 통해 투자 여지와 필요성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유라시아를 주제로 한 이번처럼 큰 규모의 국제 콘퍼런스는 처음인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를 정리해 달라.
이 원장=유라시아 협력을 향한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의 ‘신 실크로드’ 구상도 그 하나다. 이런 때에 한국도 동북아에서의 고립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발전에 동참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콘퍼런스는 유라시아 협력을 주제로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회의다. 더욱이 안보 경제 에너지 교통 농업 등 각 분야가 망라되어 있다.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에 유라시아 시대가 도래하고 있음을 알리고 이제부터 던져진 과제를 후세가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김 원장=유라시아라는 보다 넓은 틀 속에서 ‘동북아 패러독스’나 ‘아시아 프리미엄’같은 부정적인 요소들이 해소되면 모두가 윈윈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국은 섬나라 의식에서 벗어나면 유라시아를 무대로 더 큰 희망을 갖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김 부원장=에너지 협력이야말로 북한을 포함한 유라시아 역내의 모든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점이 콘퍼런스에서 특히 강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원장=한반도는 이제 해양 국가에서 대륙 국가로 발돋움할 기회를 맞고 있다. 해양과 대륙이 연결될 경우 교차점에 있는 한국의 강점을 살릴 기회가 온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