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하정우와 7년 전 함께 작품을 하자는 약속을, 영화 ‘롤러코스터’로 이룬 정경호. 평소 마음 놓고 할 수 없는 욕을 연기로 마음껏 풀어냈다는 그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며 웃었다. 김민성 기자 marinboy@donga.com 트위터@bluemarine007
■ 하정우 감독 영화 ‘롤러코스터’ 주연 정경호
군 복무 중 휴가 나왔다 만난 하정우 형
날 위해 시나리오 썼다고…당연히 OK
사실 대학 선배 정우 형과는 10년 지기
7년 전 BIFF서 함께 영화 만들자 약속
2003년. 중앙대 신입생 정경호는 학교의 유명 인사이자 선배인 하정우가 만든 동아리 ‘하정우 엔터테인먼트’의 립싱크 그룹으로 활동했다. 워낙 인기여서 대학 캠퍼스가 있던 경기도 안성시에서까지 행사 요청이 쇄도했다.
2006년. 정경호와 하정우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지금처럼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영화로 영화제를 찾았고, 밤바다를 보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그리곤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끼리 영화 만들어서 꼭 함께 오자.”
그리고 2013년. 꿈은 7년 만에 실현됐다. 정경호가 주연하고 하정우가 감독해 17일 개봉하는 ‘롤러코스터’는 12일 막을 내린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은 건 물론, 영화제 내내 가장 큰 화제를 뿌렸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7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는 정경호는 하정우에게 물었다.
하정우는 답했다.
“왜 안 나겠냐. 지금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정경호는 군 복무 중이던 지난해 말, 말년 휴가를 나왔다 만난 하정우로부터 ‘널 위해 시나리오 하나 썼다’는 말을 들었다.
“군대에서 5분에 한 번씩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단 생각을 하던 때였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났고.(웃음) 날 위한 시나리오를 썼다는데. 해야지.”
정경호는 극중 ‘육두문자 맨’이란 영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한류스타 마준규를 연기했다. “공식적으로 욕 허가를 받았다”는 그는 마준규를 연기하며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꼈다.
“평소 연예인 병 걸린 사람들 많이 봤다. 정말 거지 같고(웃음), 꼴사납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내가 마준규로 다 표현했다. 무의식에 즐긴 것도 같다. 욕까지.”
영화를 본 가족들의 반응도 ‘이렇게 욕 잘 하는 지 몰랐다’는 놀라움이었다. 그의 부친이자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등을 연출한 정을영 PD는 영화를 본 뒤 거하게 취했다.
“아버지는 워낙 자세하게 얘기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엔 좀 뿌듯해 하신다.”
정경호는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고도 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다.
“아버지는 유명한 드라마 PD이고 난 알려진 연기자인데. 우리 엄마는 좀 안쓰럽기도 하다. 둘 다 너무 바쁘니까. 어릴 땐 아버지가 주말드라마를 시작하면 서너 달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게 정말 싫었다.”
이제 서른이 된 정경호는 일을 하면 할수록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연기를 하면서 감독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느낀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든지도.”
서른 살의 무게가 점차 느껴지는 건 정경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원하는 작품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인지도가 더 높은 배우나 아이돌 스타를 원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래서 더 새로운 걸 찾게 된다.”
진지한 대화를 잇다가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을 느닷없이 던졌다. 얼마 전 라디오에서 고백한 여자친구의 존재. “윽. 그 얘긴 안 하면 안 되겠느냐”는 정경호는 “정말 ‘욱’해서 한 말”이라고 했다.
“옛 여자친구 사진을 갖고 있는 남자, 전 남자친구가 사준 명품백을 버리지 않는 여자. 둘 중 누가 더 나쁜지 말하다가 그만…. 여자친구와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와 버렸다. 흐흐.”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