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정치부 기자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차량이 인도네시아 길 한가운데서 멈춰 섰다. 10일 저녁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가는 길에서 살인적인 교통체증 때문에 벌어졌다. 마침 터진 대형 교통사고도 한몫했다. 경찰 호위차량이 대통령 일행 차량이 움직일 차로를 확보하기 위해 사이렌을 울리며 노력했지만 꽉 밀린 차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3명 이상 차에 타야 대로(大路)로 진입할 수 있게 해 길거리에 아기를 안고 카풀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다.
석유보조금 논란은 인도네시아의 가장 큰 사회적 문제다. 평등하게 소득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결과적으로 큰 차를 가진 부자들에게 더 혜택이 가고, 차 없는 서민들은 아무 혜택을 못 받아 빈부격차를 더 벌렸다. 기름보조금에 워낙 많은 재정을 투입하다 보니 다른 인프라 사업에 투자할 돈이 부족해졌다. 이제 와서 보조금을 줄여 기름값을 올리려 하니 물가가 급등해 전국이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1년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올해 6월 기름값을 1차로 올렸고 추가 인상을 추진 중이나 국민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사례는 재정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실시한 복지 정책이 얼마나 큰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뒤늦게 이를 바로잡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지난주 방문한 브루나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 달러에 육박하는 석유 부국이지만 인구가 늘자 복지 수준을 축소하는 추세다.
박 대통령은 부족한 재정 때문에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모두 기초연금을 20만 원씩 주겠다는 공약을 수정했지만 앞으로 공약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고생만 해온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은 해야 한다는 뜻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동정민 정치부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