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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고 재기발랄 vs 스타의 단맛쓴맛

입력 | 2013-10-17 03:00:00

배우출신 하정우-박중훈의 메가폰 대결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꿈꾸며 두 배우가 감독으로서 출사표를 던졌다. ‘롤러코스터’(17일 개봉)의 하정우(35)와 ‘톱스타’(24일 개봉)의 박중훈(47)이다.

일주일 간격으로 데뷔작을 선보이는 두 감독은 여러모로 비교된다. 하정우는 영화의 각본을 썼고, 박중훈은 각본 기획 제작까지 1인 3역을 맡았다. 올여름 ‘더 테러 라이브’에서 원맨쇼를 펼치며 557만 관객을 모은 하정우는 현재 톱스타다.

반면 1980, 90년대 톱스타였던 박중훈은 영화 출연이 뜸하다. 톱스타의 자리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젊은 배우와, 톱스타였던 중년의 배우가 메가폰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 ‘롤러코스터’에서도 하정우만 보인다

하정우 감독의 데뷔작인 ‘롤러코스터’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코믹한 대사 덕분에 한시도 심심할 틈이 없는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롤러코스터’는 하 감독이 “내가 감독으로서도 이만큼 재주가 있다”고 증명하기 위해 작심하고 만든 영화 같다. 이름난 배우 한 명 나오지 않는, 제작비 6억 원의 저예산 영화는 시나리오와 연출력으로 승부를 건다.

영화의 공간과 이야기는 단순하다. 영화 ‘육두문자맨’으로 일약 한류 스타가 된 마준규(정경호)는 일본에서 김포행 비행기에 오른다. 기내에서도 유명세에 시달리던 마준규는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착륙하지 못하자 온갖 고생을 겪는다. 이야기는 비행기 안에서 시작해 비행기 안에서 끝난다.

캐릭터들은 각양각색의 꽃을 한데 모은 오색 꽃다발 같다. 하나하나가 오롯이 살아있으면서도 조화를 이룬다. 마준규에게 브래지어 끈을 풀고 등에 사인해 달라는 새색시, 간이라도 내줄 듯 친절하다가 뒤에서 욕하는 두 얼굴의 승무원이 등장한다. 음주 비행을 자랑하는 기장들, 마준규가 출연한 영화에 투자한 기업 회장과 그의 비서, 파파라치 같은 스포츠신문 기자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톡톡 튀는 캐릭터들이다.

하 감독은 관객이 어느 지점에서 웃을지 정교하게 계산했다. 한국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재기발랄한 캐릭터 코미디다. 다만 말장난과 과도한 욕설에 거부감을 느끼는 관객이라면 피하는 게 좋겠다. 15세 이상.

○ 주제 속으로 골인하지 못한 ‘톱스타’

톱스타였던 박중훈 감독이 연출한 ‘톱스타’. 박 감독은 데뷔작에서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영화를 선보이려 했지만 첫술에 배부르지는 못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박 감독은 16일 ‘톱스타’의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는 내 경험담이 들어가 있다. 실명을 거론하기 어렵지만 실제 스타들의 모습도 녹여냈다”고 했다.

배우를 꿈꾸던 로드매니저 태식(엄태웅)은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톱스타 원준(김민준)의 죄를 뒤집어쓰는 대가로 드라마 배역을 얻는다. 드라마가 히트하자 태식은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하지만 원준이 자신을 무시하자 태식은 음모를 꾸민다.

‘톱스타’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익히 봐왔던 연예계 가십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예측하기 어렵지 않은 이야기가 몰입을 방해한다. “유명세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너는 가짜다. 본질이 아니다. 심장으로 말해라” 같은 훈계조의 대사들에서는 옛날 영화의 느낌이 난다. “배우는 (감독이 조종하는) 살아있는 피사체다” 같은 문어체 대사도 귀에 거슬린다. 김민준, 소이현의 연기는 기대 이하다.

박 감독은 부침이 심한 연예계의 모습을 통해 욕망과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영화는 림을 돌다 튕겨 나온 농구공처럼 주제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첫 연출작에서부터 주인공의 내면 변화를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을 바랐다면 기자의 과욕일까. 15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