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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가을밤 슈퍼스타의 선율에 휘감기는 행복감

입력 | 2013-10-17 03:00:00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 내한공연 ★★★★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은 탓에 전동 휠체어를 타고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 피아니스트 로한 드 실바와 함께 깊이 있고 우아한 연주를 들려줬다. 크레디아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68)의 내한 공연 프로그램 북에는 단 세 곡만 명시돼 있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과 그리그 소나타 3번, 타르티니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타르티니 이후의 곡들은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발표되고 연주됩니다.’ 한 음악칼럼니스트가 그랬다. “펄먼이니까 가능한 일이죠.”

공연 전 펄먼은 공연기획사인 크레디아 측에 세 곡이 적힌 프로그램을 전달하면서 “나머지 곡들은 한국 무대 상황을 보고 알려주겠다. 지금 미리 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공연 1주일 전 크레디아는 다시 한번 펄먼의 매니저에게 질문했지만 추가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국에 도착한 뒤 펄먼은 리허설 없이 공연장의 조명과 사운드만 체크했다.

14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객석은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슈퍼스타 바이올리니스트가 감춰 둔 선물 상자는 ‘소품 잔치’였다. 타르티니가 끝난 뒤 펄먼과 15년간 호흡을 맞춰 온 스리랑카 태생 피아니스트 로한 드 실바는 백스테이지에서 페이지터너에게 “우리도 어떤 곡을 고를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일단 다 들고 들어가자”라고 하면서 한 뭉치의 악보를 건넸다.

펄먼은 크라이슬러의 ‘멜로디’로 문을 열고 같은 작곡가의 ‘코렐리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포레의 ‘꿈을 꾼 뒤에’, 존 윌리엄스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 테마곡 등 소품 6곡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선사했다. 귀에 익숙하지만, 실연에서 고품질의 연주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바치니의 ‘요정의 춤’에서는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해야 하는 고난도의 기교를 가뿐하게 구사해 감탄을 자아냈다.

우리 시대의 거장은 전성기같이 찬란하게 빛나지는 않았지만 여유롭고 따사로운 온기로 객석을 감싸 안았다. 공연 시작 직전 펄먼은 드 실바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오케이, 쇼타임!” 훈훈한 공기 속에 행복한 미소가 번져 나가는 시간이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