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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두근두근 메트로]48km 걸음마다 역사와 만나다

입력 | 2013-10-18 03:00:00

100년만에 복원된 ‘의주길’ 고양 삼송∼파주 임진각 구간
한양∼파주∼개성∼평양∼의주 잇던 길
‘열하일기’ 박지원이 이 길 통해 中으로
숫돌고개… 벽제관지… 향교… 고읍마을, 선조들의 숨결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1000년 가까이 이어온 의주길 ‘고양 삼송∼파주 임진각’(48km) 구간이 100여 년 만에 역사·문화 탐방로로 26일 복원된다. 사진은 의주길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고양향교∼대자산을 연결하는 ‘흙담길’(위쪽)과 대자동에 있는 ‘온녕군 사당’. 고양시 제공

고려와 조선 시대 한양과 평안북도 의주를 잇던 ‘의주길’. 이 길은 한양∼고양∼파주∼개성∼평양∼의주를 잇던 대로(大路) 중 가장 중요한 길이었다. 중국 연경까지 연결돼 수많은 사신들이 오갔고 왕이 행차를 할 때도 늘 이용했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쓰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고려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1000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의주길 가운데 ‘고양 삼송∼파주 임진각’(48km) 구간이 100여 년 만에 복원됐다. 26일 역사·문화 탐방로로 개통된다.

기자는 8일 오후 고양시 구간을 걸어봤다. 의주길은 등산로나 산책로와 다르다. 가급적 옛길 그대로 복원하려다 보니 ‘흙길’과 ‘포장길’, ‘숲길’과 ‘차도’를 오가는 이색적인 길이 됐다. 출발점은 지하철 3호선 삼송역 8번 출구 앞. 통일로와 지방도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버스와 지하철이 경유하는 교통의 요충지다. 삼송초등학교 방향으로 4차로를 건너자 잘 닦인 포장길이 펼쳐졌다. 길가에는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피어 있다.

10여 분을 걸어 폭 1m 남짓한 숲 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은 흙길이지만 사각사각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기분은 묘했다. 사람의 흔적은 없었고 주변은 흙 내음과 소나무 향기로 가득했다. 서서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500m 정도 숲을 헤치고 나가자 100m²(약 30평) 정도의 작은 평지가 나왔다. 이곳은 ‘숫돌고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에게 패한 뒤 이곳에 있던 바위에 무뎌진 칼을 갈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잠시 숨을 돌리며 숫돌바위를 찾았지만 아쉽게도 그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보이는 북한산의 가을은 절경이었다. 북한산 왼쪽으로 서울시와 고양시 경계인 매봉(응봉)도 눈에 들어왔다.

10여 분을 쉬고 숫돌고개를 내려왔다. 반대편으로 올라올 때보다 경사가 심하다. 500여 m를 걸어 나오면 임진각까지 연결되는 통일로를 만나게 된다. 의주길이 포장·확장되면서 지금의 통일로가 생겨났다. 통일로를 걸을 때는 갓길이나 보도를 이용하는데 교통량이 많아 주변을 살펴야 한다. 북쪽으로 3∼4km 가면 공릉천의 지천인 벽제천이 나온다. 의주길은 벽제천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져 있다. 때마침 실개천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가을바람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벽제천의 끝은 고양동 벽제관지와 맞닿아 있다. 벽제관지는 한양으로 오가는 길목에 세워져 중국의 사신단이 머물렀던 곳. 일제강점기에 일부가 헐렸고 6·25전쟁 때 모두 불타면서 지금은 관사의 윤곽과 4000m²(약 1300평) 남짓한 터만 남아 있다.

차도를 따라 10여 분 걷자 고양향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대자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흙담길이 인상적이다. 여기서부터 다시 울퉁불퉁한 흙길이 시작된다. 산길을 따라 오르면 산과 논밭이 잘 어우러진 옛 마을의 모습을 간직한 고읍마을을 만나는데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평온하고 한가롭다.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전문위원은 “의주길은 역사적 고증을 거쳐 원형 그대로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는 26일 오전 9시 반 벽제관지에서 의주길 개통식과 함께 걷기대회를 연다. 25일까지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www.ggcf.or.kr)에서 신청하면 된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