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니(1972∼)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화자는 온 힘을 다해 살아본 거다. 그래도 뭐가 안 되니까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하는 걸 테지. 억세게 슬프거나 우울하면 식욕이 뚝 떨어지게 마련이지만, 어떤 이들은 폭식증을 일으킨다. 화자는 기절할 정도로 힘든데 다 잊어버리고 놀겠단다. 그 힘듦, 삶의 얼음판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미끄럼질 치겠단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그리고 밥을 먹겠단다. 두 그릇 세 그릇 먹고 한밤에 폭식을 했으니 속은 더부룩하고 기분은 비참할 테다. 어느덧 해가 떠오른다. 울고 싶어지는데, 그러니까 또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단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