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그룹 5개사 법정관리 시작]■ 금융위 국감서 ‘금융당국 책임론’ 제기
현재현 회장 “투자자들에 진심으로 죄송”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17일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이를 듣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표정이 굳어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개인 투자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인데도 당국은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고 결국 5만여 명의 투자자가 2조 원의 투자금 중 상당 부분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태는 동양그룹의 ‘도덕적 해이’와 허점투성이 규제, 당국의 부실한 감독이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 부실 커지는데도 당국 ‘나 몰라라’
그런데 동양그룹의 경우에는 감독 당국이 ‘구조조정 조율사’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2009년 은행 빚이 많아 주채무계열 대상에 포함됐던 동양그룹은 이듬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판매한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대거 발행해 은행 빚을 줄이는 방법으로 주채무계열에서 벗어났다. 상시적 감시체계를 벗어나 금융감독 당국의 감시의 눈길을 피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국은 이런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뚜렷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동양그룹의 마구잡이식 채권 발행을 사실상 방치했다.
동양그룹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 CP와 회사채를 판매한 ‘불완전 판매’ 문제가 있었지만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 2008년 이후 3차례에 걸쳐 동양증권의 계열사 채권 판매를 검사했지만, ‘문책 경고’ 이상의 조치를 취한 적은 없었다. 금감원 불완전판매신고센터에 들어온 동양그룹 사태 관련 피해신고 1만1236건 대부분은 불완전 판매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증권 관련 규제가 대거 풀린 것도 동양그룹의 도덕적 해이를 키웠다. 과거 증권사는 상장회사, 공기업 등의 CP만 판매할 수 있었지만 2009년 자본시장법이 시행되면서 이런 규제는 사라졌다. 동양그룹이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등 비상장회사를 통해 CP를 찍어 동양증권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2008년 증권사가 계열사 지원 목적으로 주식, 채권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 조항을 없앤 것도 동양그룹의 마구잡이식 채권 발행을 부추겼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당시에는 직접규제를 간접규제로 바꾸고 투자자 책임을 강조하던 시절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여지가 있는 규제를 지나치게 푼 셈이 됐다.
17일 국회 정무위에서 열린 금융위 국정감사에서도 동양그룹 사태에 대한 ‘금융당국 책임론’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금융당국이 동양그룹 부실의 위험성을 알고 대처할 기회가 충분했는데도 이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기준 의원은 “2008년 9월 금감원이 동양증권에 대해 문책 경고를 하면서 이 회사와 ‘향후 CP 판매를 줄이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맺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은 “2011년까지 투자설명 동의서에 굵은 글씨로 표시됐던 위험 경고의 글씨 크기가 2013년 들어 보기 힘들 정도로 쪼그라들었다”며 “동양 사태는 경영진의 부도덕성과 도덕적 해이, 투자자 보호 미흡 등의 집합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영주 의원은 “동양그룹 CP 투자 피해자가 2011년 저축은행 후순위채 피해자보다 배 이상 많고 피해 금액도 훨씬 크다”며 “2008년 금감원이 처음 불법을 발견했을 때 투자부적격 등급 CP 발행을 금지하는 내용의 제재조항을 만들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재를 다 내놓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 회장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염두에 두고 부실 채권을 발행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신청 이틀 전까지도 법정관리로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동양그룹의 ‘숨은 실세’라는 의혹을 받아온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도 이날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동양네트웍스는 능력이 있다고 30대를 바로 사장으로 채용하느냐’는 질문에 “대학 졸업 못했다고 회사를 맡으면 안 되는 겁니까”라고 맞받아쳤다.
이상훈·한우신 기자 janua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