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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톡톡]최근 유행인 ‘열린 채용’ 어떻게 보시나요

입력 | 2013-10-18 03:00:00

인-적성 시험 준비 수능보다 힘들어… 열린채용은 또다른 스펙 경쟁
“너는 아니?” 황당한 돌발 면접질문… 취업설명회 지방대는 서러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대학을 다니는 목적이 오직 ‘취업’이 된 세상. 수백 장의 원서를 쓰고, 성형 수술에, 각종 자격증까지 따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게 ‘합격’은 너무나 먼 이야기입니다. 푸른 꿈을 안고 다녔던 학창시절은 어디로 갔나요. 대한민국 기업이 옛날에 비해 반 토막이 난 것도 아니고, 학생 수는 점점 줄어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이 많다는데 왜 취업은 이다지도 어려운 것일까요. 목지선(성신여대 영문과 졸), 이병철(서강대 신방과 4학년) 동아일보 인턴이 오늘도 입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취업준비생들을 만났습니다. 이들에게 최근 유행인 ‘열린 채용’은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요. 》

인적성 모의고사 비용 30만 원은 기본

최근에 삼성 SSAT뿐만 아니라 현대자동차 HKAT, 한화 HAT 등 기업별 인·적성 시험이 지나치게 많아졌다. 기업별 인·적성 시험 내용, 유형에 차이가 있어서 주요 대기업 지원자들의 경우엔 적어도 7, 8권의 관련 책을 사 봐야 한다. 대기업 인·적성 모의고사 가격이 2만∼6만 원이니 30만 원 정도의 비용은 기본이다.(25·여·졸업 예정)

한 대기업 인·적성 모의고사를 풀어봤는데 성적이 기대 이하였다. 그런데 시험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인·적성 강의를 등록해 들었다. 약점인 도형, 공간추론, 수리 동영상 강의를 수강했는데 돈도 많이 들고 ‘이게 정말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는 데 필요한 건가’란 의문이 많이 들었다.(26·남·졸업 예정)

인·적성 시험이 힘든 건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결국 어느 회사 시험을 치를지 모른다는 점이다. 수십 군데 원서를 내는데 그걸 다 준비할 수도 없고, 서류 합격하면 일주일 후에 인·적성 시험을 치르는데 그 기간으론 3, 4군데도 준비하기 어렵다. 회사마다 다 시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러 군데 서류전형을 합격한 사람들은 한두 곳을 포기하는데 다른 학생들은 그마저도 부러워한다.(29·남·졸업 예정)

소금물 농도 계산을 잘한다고 일도 과연 잘할까. 성실성 같은 건 인·적성 시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본다.(25·남·졸업 예정)

돈을 많이 써도 안 되는 게 인·적성 시험이다. 책도 계속 푸는데 탈락하는 사람이 많다. 한 달에 4권 정도 풀어도 안 되더라. 그런 사람들은 능력이 있어도 인·적성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히는 것 같다.(24·여·졸업 예정)

열려도 너무 열렸어요

대기업 열린 채용 프로그램들을 경험했는데 다른 지원자들과 대화해 보니 결국 스펙들의 대향연이었다. 스펙보다 스토리를 본다는 ‘열린 채용’도 결국 공모전, 인턴, 대외 활동, 워킹홀리데이 경험 등 결국엔 또 다른 ‘스펙’으로 경쟁하는 것 같더라. ‘열린 채용’이란 말이 좀 우습다고 생각했다.(27·남·졸업 예정)

학벌, 학점이 좋지 않아 ‘열린 채용’에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이 ‘열린 채용’으로 인해서 오히려 좋은 학벌, 높은 학점을 가진 친구들이 역차별을 받는 건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4년 동안 전공 공부와 영어 공부만을 성실하게 한 친구들이 ‘열린 채용’에 도전하긴 힘들기 때문이다.(24·여·졸업 예정)

열린 채용에 참여했는데 면접관님께서 ‘실무 경험’을 많이 강조했다. 그런데 사실 인턴을 하지 않고는 대학생들이 ‘실무 경험’을 가지기는 힘들다. 스펙보다 스토리를 보겠다고 한 열린 채용인데 오히려 ‘인턴’이란 과정이 또 다른 스펙이 된 것 같아 이상했다. 어차피 입사하면 두세 달 동안 교육, 연수를 거치면서 기본부터 다시 배울 텐데 ‘실무 경험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가’란 생각이 들었다.(25·여·졸업 예정)

‘열린 채용’으로 대기업에 합격한 선배 신입사원들을 다룬 기사를 읽었는데 ‘히말라야 산맥 5000m 고지 등정’ ‘아프리카 오지 봉사활동’ 등을 했다고 나왔다. 내 경우엔 그냥 동아리, 국내 봉사활동 정도만으로 열린 채용을 준비했는데 당연히 떨어졌다. 세상이 마치 컴퓨터 기종처럼 점점 더 스펙만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었다.(26·여·졸업 예정)

열린 채용이란 말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은행들은 업무와 관련 없는 전공자 혹은 관련 자격증 하나 없는 사람이라도 뽑는 경우가 있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럼 은행만을 위해 자격증을 따고, 인턴을 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닐까. 관련 전공자 같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닫힌 채용’이 아닐까.(24·여·졸업 예정)

창조성-순발력 검증 질문?

대기업 면접에서 ‘서울에 사는 바퀴벌레는 총 몇 마리인가’ ‘한라산이나 백두산을 옮긴다면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드나’란 질문을 받았다. 황당했다. 대통령까지 ‘창조’를 말하니까 온 세상이 창조적으로 변한 것 같다. 아는 사람도 없을 테고…. 기발한 착상을 보겠다는 취지이겠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것 아닌가? 질문을 받으면서 ‘이건 창조적인 게 아니라, 돌아이 뽑는 시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27·남·취업준비생)

어떤 대기업 면접을 봤는데 ‘골프공에 구멍이 몇 개냐’고 묻더라. 순발력, 상황 대처 능력 등을 보기 위해 이런 돌발 질문을 던진다는데 면접자들 입장에선 사실 혼란스럽다. 면접관들에게는 수많은 면접 중 일부일지 몰라도 지원자들에겐 어쩌면 생애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다. 이런 질문들로 순발력, 상황 대처 능력을 보는 것보다 지원자들의 기본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25·여·졸업 예정)

1박 2일 합숙 면접을 했는데 같은 조원 평가를 하고 ‘가장 일하고 싶지 않은 동기’를 적어 내라고 하더라. 뭐 이런 시험이 다 있나. 너무 비인간적이라고 느꼈다.(29·남·취업준비생)

일부 특이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대학 생활 동안의 경험이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너무 ‘튀는’ 사람을 원하다 보니 자기소개서(자소서)를 솔직하게 못 쓰고 부풀리거나, 과장하게 된다. 자기소개서가 자기소설서(자소설)가 되는 셈이다. 경쟁이 심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 같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를 과장하는 사람이 회사에 정말 필요한 사람일까.(26·남·졸업 예정)

지방·비(非)명문대생에겐 여전히 ‘닫힌’ 채용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데 웬만한 대기업 채용설명회는 명문대에서만 열린다. 그래서 수업을 빠지고 다녀왔다. 말로는 ‘열린 채용’이라면서 왜 취업설명회는 소수 대학에서만 하나. (26·여·졸업 예정)

지방대생은 돈 없으면 취업 못 한다. 인·적성 시험, 채용설명회 등이 다 서울에서 열리기 때문에 교통비, 숙박비가 많이 든다. 지방대는 채용설명회를 오는 기업도 업종이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2시간 동안 딱 설명만 하고 가니까, 채용박람회까지 하는 서울에 비해 선택의 폭이 좁다.(23·여·졸업 예정)

취업설명회라면 누구나 가서 듣고 해당 기업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리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어떤 기업의 경우 명문대 채용설명회에서 번호표를 주는데, 이 번호를 받아서 입력해야 입사원서 제출 시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다. 채용설명회부터 ‘필터링’이다.(24·여·졸업 예정)

우리 학교에선 좋은 회사의 채용설명회는 안 열린다. 확인할 길은 없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회사 측에서 채용설명회를 안 나가는 학교는 실제 입사 시험에서도 거의 배제된다는 말이 떠돈다.(25·여·졸업 예정)

아는 친구가 항공사 승무원이 되고 싶어 성형수술도 받고, 워킹홀리데이까지 갔다 왔다. 승무원은 비상시 구조대원도 돼야 한다며 수영도 배웠다. 그런데 쟁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지 서류전형도 안 됐더라. 결국 승무원 포기하고 가리지 않고 원서를 내는데 1년 반째 놀고 있다.(24·여·졸업 예정)

공기업 같은 경우엔 한국사 시험 자격증이 있으면 가산점을 주니까 그것도 준비해야 한다. 한국사 강의를 듣는 데 20만 원 정도 들었다. 2급도 인정은 되는데 1급 따기 위해 두세 번 시험을 치렀다. 컴퓨터 시험도 자격증을 한 번에 따기는 어렵다. 10번 정도 본 것 같다.(25·남·졸업 후 1년)

상반기에 한창 원서를 쓸 때는 하루에 자소서를 2, 3개씩 썼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식욕을 잃고 몸무게까지 빠지더라. 소화 불량도 있었고. 하루에 한 끼를 먹는 일이 다반사였고, 비슷한 시기에 여러 기업이 채용을 해 원서 제출 기한에 맞추기 위해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때우며 쓰기도 했다. 몸만 망가졌다.(24·여·대학 4학년)

정리=이진구 오피니언팀 차장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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