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태는 저축은행 20개 파산한 정도의 피해를 줄 것”
인터뷰하고 있는 조남희 대표. 신한종합연구소, 신한은행을 거친 그는 2012년 7월 금융소비자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을 출범시켰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침울하던 분위기는 한 남성이 단상에 올라 자신이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 말하면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거친 말들이 튀어나왔다. “정부가 동양이랑 한통속이야” “현재현 회장이 재산이 없다고? 전두환처럼 자식들한테 빼돌려놨겠지. 몇 년 징역 살고, 우리 서민들 뜯어먹은 돈으로 잘살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이 베트남 가고, 미국 갈 때 경제사절단으로 현 회장 데리고 다닌다고, 동양증권에서 사진까지 출력해서 보여주면서 튼튼한 회사라고 했잖아. 왜 대통령 사진까지 쓰면서 사람들 현혹시켜?”
하지만 잠시 후 단상에 오른 변호사가 “금융사 관련 소송은 소비자들에게 유리하지 않은, 길고 긴 싸움”이라고 말하자, 장내에는 다시 냉기류가 흘렀다.
행사가 끝나고 금융소비자원 조남희 대표와 마주 앉았다.
―개인들의 피해액을 어느 정도로 보나.
“적은 사람은 900만 원, 많은 사람은 3억2000만 원 정도. 평균 6000만 원의 피해가 생긴 셈이다. 가정주부, 은퇴자들의 피해가 크다. 20, 30대 월급쟁이도 많다.”
―결국 정기예금 금리보다 1, 2% 더 받으려고 위험이 높은 곳에 투자한 것 아니냐.
그는 “이번 사태가 심각한 이유는 10년 전부터 불었던 ‘종합자산관리(CMA) 통장’과도 연관이 깊다”고 했다.
“CMA는 입출금이 자유로우면서 매일 이자가 붙기 때문에 단기 예치 자금일 경우 많이 쓴다. 동양증권 CMA가 다른 급여통장보다는 훨씬 이율이 높고, 5000만 원까지는 원금 보장을 해주는 만큼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젊은이들이 많이 가입했다. 또 퇴직금을 넣어두고 이자 몇 십만 원이라도 나오면 이를 다달이 꺼내 생활비로 쓰는 은퇴자들, 자녀들 결혼자금으로 모아 놓은 단기 자금을 갖고 있던 중년 여성들…. 이런 사람들을 동양이 놓치지 않은 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동양 직원들이 ‘왜 CMA 통장에 돈을 묵혀 두세요. 이율이 좀 더 높은 상품이 있으니 제가 그리로 옮겨 놓을 게요’ 전화를 건다. 그 말의 의미가 불량한 회사채인지 뭔지, 알았던 사람은 없었다. 회사 직원들은 금융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재빨리 동의를 받아낸 거다.”
금융소비자원 주최로 1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심산기념문화센터에서 동양증권 피해자들이 대책모임을 열고 있다. 전국에서 올라온 1500명이 자리를 채웠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실제로 이날 기자가 행사장에서 만난 많은 피해자들은 2012년 3월부터 “고객님, CMA 통장에 ○○만 원이 들어있던데요. 좋은 ‘상품’이 있어요. 6%씩 이자가 붙으니 비밀번호를 저한테 불러주시면 우선 제가 옮겨놓고 나중에 자필 사인만 해주시면 됩니다”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위험하지 않냐” “원금 손실은 없느냐”고 물으면 직원들은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 한 원금 손실 같은 건 없다” “동양에 자산이 많다. 더구나 삼척발전소 경영을 정부가 맡긴 안전한 회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양이 자금 압박을 받던 7∼9월에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각해졌다”고도 했다. 그들의 말 중에는 회사가 고객에게 자필로 꼭 받아야 하는 ‘투자자정보 확인서’나 ‘부적합 금융투자상품 거래확인서’가 조작된 정황도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은 “83세 모친의 투자 성향이 ‘공격투자형’으로 나왔다고 우기는 직원에게 ‘당시 모친이 표시했다는 응답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그런 건 바로 버린다’고 하더라. 이번에 보니까 직원이 몰래 사인한 경우까지 있었다”고 했다. 한 주부는 “‘어떻게 망해가는 회사 어음을 팔 수 있느냐’고 따졌더니 ‘사과장수가 자기가 파는 사과를 썩었다고 말하며 파는 거 봤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가슴을 쳤다.
“금융위원회 고위직이라는 분이 저희를 만나서 한다는 소리가 ‘그 사람들도 고위험 고수익 노린 사람 아닙니까’라고 하더라. 동양그룹의 CP 발행액은 2006년 1조 원대에 달했고, 증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금융감독원도 2009년 동양증권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계열사 CP 규모를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동양은 2011년부터 오히려 이전보다 CP 발행을 더 늘렸다. 금융당국이 하는 일이 뭔가. 이런 사기적 판매구조가 발생하지 않도록,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했어야 했다.”
금융사들, 개인 희생 발판으로 컸다
―금융당국도 국민검사청구제를 통해 회사채와 CP 불완전 판매 여부를 규명한다고 하던데….
“얻을 수 있는 실익이 크지 않다. 고작해야 ‘피해가 많았다’는 정도의 사실증명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금융당국은 동양증권이 아직 살아 있을 때, 책임을 물어서 조금이라도 많이,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도록 피해자들의 채권 보전 조치를 해줘야 한다. 소송까지 다 끝나고 난 뒤, 받을 재산이 하나도 없고 관련자들은 감옥 가면 피해자들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중소기업의 키코 사태라든지,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 근저당권 설정비를 소비자 부담으로 하는 비합리적 청구, LIG의 기업어음 사건 등등 당국의 수수방관 속에 일반 금융소비자들이 계속 피해를 당해 왔다. 동양 사태는 저축은행 사태를 20개 정도 뭉친 정도의 파급력이 올 것으로 보면 된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전화로 투자 동의를 받나.
“이렇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 판매는 승인 자체가 나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금융 지식이 많지 않다. 이들을 속여 상품에 잘못 가입하지 않도록 규제와 모니터링이 엄격하다. 우린 승인도 엉망으로, 시장 관리도 안 한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계속 성장하는데 이런 문제가 왜 계속 나오나.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소비자 피해와 희생을 기반으로 육성한 거다. 금융사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핵심적인 분야에 진출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얼마 없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영업하는 것에 다 걸고 있다. 어떻게든 투자를 받고, 돈을 받아야 하다 보니 사기성 짙은 말들을 금융사 직원들이 하게 된다. 이들은 30분 가까이 고객들에게 장밋빛 예상수익을 말한 뒤, 위험성에 대해서는 슬쩍 언급만 한다. 계약서 군데군데 형광펜으로 표시한 곳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자필 사인하시면 됩니다’ 하거나 직원 말에 떠밀리듯 ‘네…네’ 하는 말을 녹음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나.
“금융사와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 자산운영, 대부 등 금융회사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이 무너지는 것이다. 동양 부실 계열사들 문제가 앞으로 계속 터지면 추가 피해자들이 약 5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래 금융사 쪽에서 일한 것으로 아는데 이런 일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은행에서도 있었고, 금융 전반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 1990년도에 금융연수원에서 자산관리에 대한 보고서와 책도 많이 냈다. 그러다 금융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피해자들을 현장에서 만나면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정보가 압도적으로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상대방(금융회사)은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이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계약서도 녹취록도 자기네한테 불리하면 안 주려고 기를 쓴다. 이러니 정보가 없는 일반인은 질 수밖에 없다. 금융업계 사람들은 그래서 날 싫어한다. 내가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지 까발리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며 대통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는 원칙과 신뢰가 생명이다. 이게 무너지면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고 말해왔다. 현 정부가 선제적 피해 방지에 실패했지만 지금이라도 적극 개입해서 피해자들을 구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되고 국민의 마음도 떠날 수 있다.
※ 이 기사에는 동아일보 인턴기자 목지선 씨(성신여대 영문과 졸업)가 참여했습니다.
인터뷰=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