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전남 여수시에서 현직 경찰관이 금고털이에 가담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파출소에 근무하던 김모 경사(45·파면)는 친구 박모 씨(45)가 우체국 금고를 산소용접기로 절단하고 현금 5200여만 원을 훔칠 때 망을 봐준 대가로 2600여만 원을 받았다. 방범순찰을 빙자해 우체국 내부와 금고 위치를 휴대전화로 촬영해 박 씨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이들은 2005년에도 현금지급기 안에 든 현금 879만 원을 훔쳤고, 김 경사는 자기 범죄를 ‘셀프 수사’했다. 고양이에게 제대로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 사건에 앞서 여수서에선 소속 경찰관들이 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사행성 오락실 업주에게 단속정보를 흘려주다 적발됐다. ‘비리 경찰서’에 이은 ‘금고털이 경찰서’라는 오명에 여수서가 발칵 뒤집혔다. 서장과 간부 전원이 물갈이 되는 등 직원 22%가 인근 지역으로 전출됐다.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조직문화를 쇄신하는 등 몸부림을 쳤다.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인가. 최근 경찰청 주관 2013년도 전국 치안성과 우수 경찰관서 평가에서 여수서가 전국 1위로 선정됐다.
▷하지만 1년 새 ‘금고털이 경찰서’에서 ‘1등 경찰서’로의 변신은 너무 극적이다. 마치 인도신화에 등장하는 아수라의 얼굴을 보는 듯하다. 좌우가 달라 한쪽에서 보면 악이고, 다른 편에서 보면 선으로 보이는 존재다. 여수서의 변신은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경찰을 상징하는 단어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민중의 지팡이’다. 꽤 역사가 깊다. 1949년 11월 민경융화(民警融和)의 표어로 등장해 서울시내 각 파출소에 내걸렸다. 지팡이에 기대려면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체중을 온전히 실어야 하는데 자칫 부러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지팡이를 몽둥이로 써서도 안 된다. 경찰은 아직도 대민접촉의 최일선을 맡고 있다. ‘지팡이’와 ‘몽둥이’, 어느 쪽이 될지는 경찰하기 나름이다. 대다수 경찰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내는 한편 분발도 촉구한다. 오늘은 제68주년 ‘경찰의 날’이다.
김재영 사회부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