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피아니스트 바부제 내한 리사이틀 ★★★★
프랑스 피아니스트 장에플랑 바부제(51)의 첫 내한 리사이틀은 최전성기를 구가하는 그의 명성을 확인한 무대였다. 19일 경기 성남시 야탑동 성남아트센터에서 그를 만난 관객은 ‘유레카! 하는 탄성이 나올 듯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게 하는 피아니스트’(파이낸셜타임스)라는 평에 고개를 끄덕일 듯싶다.
첫 곡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33번 c단조가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시작됐다. 바부제는 하이든에서 담백하게 균형을 유지하더니 다음 곡인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에서 객석의 호흡을 정지시키듯 관객의 눈과 귀를 바짝 당겼다. 베르트랑의 산문시에 담긴 낯선 밤의 풍경을 음표로 그려낸 이 작품은 탁월한 감각과 기교를 겸비해야 하는 난곡으로 꼽힌다.
바부제는 ‘물의 요정’에서 물방울이 통통 튀어 오르고 물결이 일렁이는 다채로운 물의 세계를 구현해냈다. ‘교수대’에서는 해질 무렵 교수대에 매달린 사람을, ‘스카르보’에서는 교활한 난쟁이 요정을 불러냈다. 라벨의 프랑스적인 섬세함이 바부제의 영롱한 터치, 깊이 있는 감수성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후반부를 모두 차지한 드뷔시의 전주곡 1권은 드뷔시라는 작곡가를 다시 펼쳐보게 만드는 연주였다. 바부제 자신도 “서른다섯 살에야 드뷔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듯이 드뷔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바부제는 전주곡 1권에 속한 12곡을 통해 ‘음악은 리듬 안에 존재하는 색채와 시간’이라는 드뷔시의 말을 증명했다.
공연장은 바부제의 손끝에서 피어오른 갖가지 색깔로 물들었고 마지막 곡이 끝나자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당초 공연장 측에 앙코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바부제는 열렬한 커튼콜이 이어지자 미소 띤 얼굴로 앙코르 두 곡을 선사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