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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같은 글씨속에서 신의 목소리를 보다

입력 | 2013-10-23 03:00:00

한양대 박물관, 이슬람 캘리그래피 특별전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와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에 대한 글을 사자 모양으로 표현한 캘리그래피. 현대 우즈베키스탄에서 제작된 것이다. 한양대 박물관 제공

《 아랍어, 페르시아어 같은 이슬람 언어의 문자는 우리에게 퍽 낯설다. 나란히 써 놓으면 물 흐르는 것도 같고 악보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슬람 문자는 그 불가해함 때문에 오히려 더욱 예술성을 발한다. 특히 이슬람 경전인 꾸란이나 시, 역사서 등을 아름답게 쓰는 이슬람 캘리그래피(아랍어로는 ‘핫’)는 이슬람 예술에서 가장 숭고한 장르로 여겨진다. 세계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서예와 더불어 글씨 예술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

국내 최초로 이슬람 캘리그래피를 본격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린다. 한양대 박물관이 24일부터 내년 2월 22일까지 여는 특별전 ‘이슬람 캘리그래피, 신의 목소리를 보다’. 전시에서는 캘리그래피 작품을 비롯해 이를 활용한 도자기와 공예품, 건축 재료, 생활용품, 그리고 오스만튀르크와 무굴제국의 세밀화까지 300여 점을 선보인다. 이슬람 캘리그래피의 발전 과정, 도구와 재료도 소개한다.

이슬람 캘리그래피의 꽃은 꾸란이다. 7세기 이슬람교가 창시된 이래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꾸란을 필사하는 데 쓰이는 여러 서체가 등장했고 전문 캘리그래퍼도 나타났다. 신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것이 금지된 이슬람에서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예술은 신의 목소리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것, 즉 꾸란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이후 페르시아 무굴 오스만튀르크 같은 이슬람 왕조에서 꾸란뿐 아니라 역사서와 문학작품을 필사했고, 세밀화 공예품 건축에도 캘리그래피를 활용했다. 지금도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서책과 공예품, 모스크를 장식하는 소재로 널리 쓰인다.

이슬람 캘리그래피에 필요한 도구들. 여러 종류의 펜과 칼, 마크타, 잉크, 필통, 종이, 연마재 등이다. 한양대 박물관 제공

동아시아의 서예와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무엇이 다를까. 동아시아에서 붓을 사용한다면 이슬람에선 딱딱한 갈대나 대나무를 칼로 깎아 펜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훌륭한 캘리그래퍼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펜부터 잘 깎아야 한다. 마크타라는 작은 받침대 위에서 펜촉을 다듬고, 실을 넣은 잉크병에서 잉크를 찍어 쓴다. 잉크병에 실을 넣는 것은 펜에 잉크가 너무 많이 묻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종이가 먹을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하는 서예와 달리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단단한 연마재로 종이를 반질반질하게 문지른 뒤 그 위에 잉크로 쓴다.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그림을 그린 뒤 그림에 관한 느낌이나 시를 서예로 표현했다. 따라서 화가가 곧 서예가였다. 반면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종교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슬람에선 사람의 얼굴이나 동물을 그리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화가의 지위는 낮았던 반면 꾸란을 적는 캘리그래퍼는 최고의 예술가로 존경받았다. 이슬람의 술탄이나 왕자는 캘리그래피를 쓰고 책을 만드는 키탑하나라는 공방을 두었다.

이슬람 캘리그래피는 17세기부터 캘리그램으로 발전했다. 캘리그램이란 문장을 적절히 배열해 인물이나 동물, 모스크 같은 형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글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형상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아랍 지역보다는 터키 페르시아 인도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이번 전시에서도 다양한 형상의 캘리그램을 볼 수 있다.

이희수 한양대 박물관장은 “세계 57개국 15억 명 이상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는데 아직 국내에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과 이슬람 문화권 사이의 교류사도 전시에서 다룰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료. 일요일 및 공휴일 휴관. 02-2220-1394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