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밖 이민아동’ 점점 느는데… 숫자도 파악 못하는 정부
‘나는 왜 한국에 왔지.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중국 출신 육모 군(19·경기 광명시)이 매일 아침 되뇌었던 혼잣말이다. 그는 16세 때 한국에 왔다. 어머니가 2005년부터 한국에서 일하다가 새 가정을 꾸려 귀화하면서 육 군을 2010년에 한국으로 불렀다.
뒤늦게 복지관을 통해 한국어를 익히고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주변에서 학교에 가는 중도입국 친구를 못 봤다. 대개 그냥 돈이나 벌려고 한다”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육 군처럼 많은 중도입국 자녀가 언어 실력 부족으로 적응이 어렵다며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
중도입국 자녀는 부모가 한국인이건 외국인이건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오게 된 자녀를 말한다. 이들의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는 힘들다. 부처별로 집계 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안행부는 귀화자와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결혼이민자 자녀만 넣는다. 교육부는 학교에 재학 중인 자녀만 파악한다. 법무부는 귀화자를 포함한 국민의 자녀 중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입국한 경우만 집계한다.
중도입국 자녀는 외국 국적이라도 한국에 정착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외국인이지만 부모가 한국인이거나 귀화자라면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특별귀화는 품행 단정, 기본 소양 요건만 갖추면 된다. 일반귀화는 △한국에 5년 이상 거주 △민법상 성년 △생계유지능력 같은 요건을 추가로 갖춰야 한다. 특별귀화를 통해 국적을 얻는 미성년 중도입국 자녀의 수는 매년 2000∼3000명에 이른다.
서울 구로구에 있는 ‘지구촌어린이마을’에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온 중도입국 자녀이거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불법체류 상태인 아이들이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전문가들은 학교 밖 중도입국 자녀를 방치하면 저소득층으로 전락해 사회 불만 세력이 되거나 사회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공교육으로 끌어들여서 친구와 어울리게 하고 한국어와 한국 사회를 배우도록 해야 한다. 헌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따라 중도입국 자녀는 물론이고 불법체류자의 아동도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2010년 한국에 입국한 카드로바 아델리아 양(14)도 공교육을 통해 한국어를 익혔다. 처음에 학교를 다닐 땐 한국어를 거의 못 했다. 쉬는 시간마다 부치지도 않을 편지를 본국 친구들에게 쓰면서 외로움을 달래기도 했다. 수업도 못 따라가고 모든 게 낯설었다.
지금은 한국어 실력이 부쩍 늘었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아델리아 양은 “처음엔 내가 하는 어설픈 말을 친구들이 따라 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말할 기회가 많아지니 자연스레 한국어 실력이 늘게 됐다”며 웃었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과)는 “중도입국 자녀에게 예산만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공교육 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처음엔 힘들더라도 스스로 일어서도록 관심을 갖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면 보충 프로그램을 이용한 통합교육을 해야 한다는 지적. 여기에는 교사의 도움이 가장 중요하다.
러시아에서 온 이예은 양(18)은 “한국에 와서 상대방이 말을 빨리 하거나 속어, 숙어 등을 쓸 때 이해하지 못하곤 했다. 학교 체육시간에 말을 빨리 알아듣지 못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으로부터 ‘멍청하다’는 구박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양의 동생인 예승 군(13)은 초등학생 때 생김새가 다르고 한국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많이 받았다. 4학년 때 만난 교사는 이 군을 따로 불러 말했다. “너는 가능성이 더 많은 아이다.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런다.” 평소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했던 이 군은 이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