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받은뒤 비밀번호까지 요구… 한 계좌서 1180만원 인출하기도
직장인 A 씨(43)는 8월 23일 새벽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길가에 주저앉았다. 깜빡 잠이 들었나 싶더니 이모 씨(50)가 자신에게 “택시비 주세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A 씨는 누군가가 자신을 택시에 태워 준 것이라 생각하고 비몽사몽간에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이 씨는 다시 “손님, 결제하려면 비밀번호 불러주셔야 해요”라고 했다. 만취한 A 씨는 무의식중에 순순히 카드 비밀번호 네 자리를 불러줬다. 다음 날 정신이 든 A 씨는 자신의 계좌에서 1180만 원이 인출됐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올 6월부터 최근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서울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의 만취객을 대상으로 57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로 이 씨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씨는 렌트한 그랜저 차량을 몰고 다니며 술에 취해 길가에 누운 사람을 물색했다. 범행 대상을 발견하면 차에서 내려 지갑과 휴대전화 등을 빼냈다. 택시 운전사 행세를 하며 카드를 받아낸 뒤 피해자가 취해서 불러주는 비밀번호를 받아 적었다. 훔친 신용카드로 현금인출기(ATM)에서 인출한 돈만 10여 차례에 걸쳐 4600만 원가량이었다.
경찰은 현금인출기 근처의 폐쇄회로(CC)TV에 찍힌 차량 번호를 추적 수사한 끝에 이 씨를 잡았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취객들이 카드 비밀번호를 물어보기만 하면 다들 그냥 알려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