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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갑’ 향한 ‘을’의 순종이 사랑이라고?

입력 | 2013-10-24 03:00:00


‘프린세스 사쿠라’.

얼마 전 ‘프린세스 사쿠라’란 제목의 다소 저질스러운 일본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불멸의 사랑’을 그린다는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애정관이란 게 해괴망측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막부시대. 명문가의 순진하고 아리따운 ‘사쿠라 공주’가 아버지가 점찍어 놓은 세도가 아들과의 정략결혼을 거부한 채 ‘곤스케’란 이름의 근본 없는 놈을 일편단심 사랑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공주가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정말 황당하다. 어느 날 밤 자기 처소로 숨어든 난생 처음 보는 이 남자에게 겁탈당한 후 사랑에 빠진다는 것. 가문이 쇠락한 뒤 홍등가에서 연명하게 된 사쿠라 공주는 오로지 곤스케가 자신을 찾아주기만을 기다린다….

아, 이 무슨 미친 스토리란 말인가. 홍등가를 찾은 곤스케가 사쿠라 공주와 재회하여 나누는 대화는 거북하다 못해 화가 치밀 지경이다.

“나를 만나고 싶어서 이렇게 타락한 거야? 미쳤군. 내가 여기를 찾아오리란 보장도 없는데 말이야.”(곤스케)

“저는 믿었어요. 매일 당신을 만나도록 해달라고 신께 빌었으니까요….”(사쿠라 공주)

자신을 겁탈한 남자를 평생 사랑한다니…. 당치도 않은 수컷 중심의 야만적 환상이다. 사랑과 성폭행을 구별하지 못하고 짐승 같은 남성에게 유린당하는 여성을 ‘지고지순한 존재’로 포장하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영화가 어찌 21세기에 탄생할 수 있단 말인가.

순간, 나의 생각은 지난달 국내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 ‘바람이 분다’에 이르게 되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제로 전투기를 개발한 실존 인물 호리코시 지로의 삶과 사랑을 담은 이 영화를 보고 나는 ‘이 영화를 끝으로 하야오가 은퇴를 선언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간 애니미즘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온 하야오가 실제 인물을 그리는 이 작품에선 충격적일 만큼의 상상력 부족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서 하야오는 진짜 이야기에는 약하고 가짜 이야기에만 강한 반쪽짜리 거장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이 작품을 통해 하야오가 일본 군국주의를 옹호하려 했는지, 아니면 반대로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려 한 것인지는 사실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나를 가장 실망시킨 것은 이 애니메이션에 담긴 애정관이었다.

주인공 지로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나오코는 알고 보니 어려서부터 불치병을 앓아온 부잣집 외동딸. 특수병동에서 하루하루 연명해야 하는 이 위태로운 여인은 가난뱅이 지로와 마지막 생을 함께하기 위해 병원을 박차고 나온 뒤 지로와 초스피드 결혼 및 동거에 돌입한다.

폐병에 걸려 피를 토해내며 자리에 누운 연인 옆에서 ‘골초’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는 지로는 오직 비행기만을 생각하며 줄담배를 피워댄다. 신혼방이 너구리굴처럼 연기로 자욱해도 여인은 행복하다. 아픈 자신을 마다하지 않은 채 따뜻하게 자기 손을 잡아주면서 또 다른 손으론 비행기 설계도를 그리는 지로가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결국 죽을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한 여인은 어느 날 이불을 산뜻하게 개어놓고 자기 물건은 깔끔하게 챙겨 어디론가 사라진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추한 모습 보이지 않겠다며 죽으러 떠나는 이 여인을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프린세스 사쿠라’는 에로영화이고 ‘바람이 분다’는 거장 감독의 졸작이다. 두 영화는 태생으로나 수준으로나 품격으로나 비교 대상이 안 된다. 하지만 나는 두 영화가 담고 있는 애정관만은 공통적이게도 매우 ‘일본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갑’을 향한 ‘을’의 무조건적인 순종. 이것을 이들 영화는 ‘진짜 사랑’이라 착각하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궁금증이 풀리는 것도 같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에서 엄청난 원전사고가 일어난 뒤 많은 일본인과 일본 언론이 보이는 태도를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사고가 터졌더라면 ‘대책 강구하라’ ‘방사능에 다 죽는다’며 국민적 저항이 일고 정부도 휘청했을 터인데, 일본인들은 참으로 쥐죽은 듯 조용한 것이다. 국가와 절대권력을 향한 순종의 유전자. 지금 일본의 모습과는 정녕 무관한 걸까.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