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여성시대]2부 전문직<3>여성 외교관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한국의 올브라이트’를 꿈꾸는 여성 외교관들이 자라나고 있다. 외교관 시험에 여자 합격자가 남자들을 앞질렀다는 것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올해만 해도 최종합격자 37명 중 여성 합격자는 절반을 훌쩍 넘는 22명(59.5%)이었다. 여성합격률은 2007년 67.7%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2010년 60%, 2011년 55.2%, 2012년 53.1%로 ‘여초(女超)’가 굳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외무고시 시험이 치러진 1968년 이후 지금까지 배출된 남녀 외교관은 총 1361명. 1997년까지만 하더라도 여자 외교관은 10여 명으로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외교가의 ‘여초’는 상전벽해라 할 만하다. 해외 순환근무를 위해 2000년대 초반 서울을 떠났다가 7, 8년 뒤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남자 외교관들이 “요즘 세종로 본부가 완전히 여자로 가득 찼다”며 깜짝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외교관들의 근무지는 그 나라의 치안, 생활환경 등에 따라 크게 (가)(나)(다)(라)등급의 4가지로 구분된다. (가)등급 국가들은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이 속한다. (나)등급은 기타 유럽 국가들이 속한다. (다)는 동남아시아 국가들, (라)는 일부 아프리카나 중동 등 험한 지역이다.
여자 외교관들이 ‘쏟아져’ 나오자 남자 외교관들 사이에서 “이러다 험지는 다 남자 차지가 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정정이 불안한 지역이나 소위 후진국으로는 남자를 보내지 않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과거 여자 외교관 수가 적을 때는 ‘보호 장벽’이 있기도 했다. 외무고시 최초 여자 수석합격자였던 박은하 외교부 전 개발협력국장(본부 대기 중)은 “1985년 내가 23세의 나이로 외교부에 들어왔을 때 부처에는 여자 외교관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여자를 오히려 배려해주고 키워줘야겠다는 분위기가 분명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같은 나라에는 되도록 여자들을 보내지 않았는데 남자들도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 중 한 곳에 여자를 파견해야 하면, 여자는 상대적으로 치안이 더 나은 쿠웨이트에 보내는 식이었다. 부부 외교관일 경우에는 한 사람을 미국 워싱턴에 파견하면 다른 배우자는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기구 유엔으로 파견을 보내는 식의 배려도 있었다.
강주연 국제안보과 1등 서기관은 2010년 아프가니스탄 파르완 지역에서, 2011년부터 올해 초까지 에티오피아 근무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왔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쟁 후 무너진 사회기반을 세우기 위해 애썼다. 강 서기관은 “해당 국가에서 직접 국제 정세에 대해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회였다. 현지에서 보니 외국 여성 외교관이 많이 파견을 나와 있었는데, 곧 한국 여성 외교관들도 중동과 아프리카에 많이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보호막’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여자들 스스로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다. 앞에 소개한 박은하 전 개발협력국장은 “과거에는 아프리카에 보내지 않는 배려를 하는 동시에 워싱턴에 보내는 ‘배려’도 없었다. 지금 들어오는 여자 후배들은 보호막이 없는 대신에 이 이상 올라갈 수 없다는 한계도 없어진 거다. 그러니 후배들이 많이 들어올수록 유리천장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여자 외교관들의 진출이 드물었던 ‘4강 외교’의 문턱도 낮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여자 사무관들은 주로 환경, 인권, 다자업무, 국제기구 등 ‘부드러워 보이는’ 업무 쪽으로 많이 진출했고 한반도, 미사일, 군사 문제는 남자들의 영역이었다. 오현주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은 “국장, 과장, 여자 사무관이 많아지면서 이제 이런 심리적 장벽들도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친정어머니-보모와 3각체제
문제는 이 시기가 여자 외교관들의 결혼, 출산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 발령이 날 경우 말라리아 약을 먹어야 하는데, 출산을 계획하고 있는 30대 여자 외교관일 경우 근무를 망설일 수밖에 없다. 남자 외교관들은 배우자가 원래부터 전업주부인 경우가 많고 맞벌이라 하더라도 부인이 그만두고 따라나서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남자 배우자가 아내인 여자 외교관을 쫓아 직업을 버리고 해외로 따라가는 경우는 드물다. 해외 발령을 받은 여자 외교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서 살고, 남편은 한국에 남는 경우가 대다수다.
15년차 외교관인 김지희 북미유럽연합경제외교과장은 “여자 외교관들은 친정어머니, 아이를 돌봐주시는 아주머니와 함께 ‘3각 체제’를 이뤄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처음에는 모두 싱글로 입사해 ‘나는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고 일하지만 아이가 하나둘 생기면 변수가 늘어나게 된다. 나 하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같이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녀 교육도 만만치 않다. 흔히들 외국에서 자녀를 키우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한 나라에서 계속 사는 것이 아니다 보니, 아이들이 학교가 자주 바뀌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언어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는 다른 나라 말을 구사하지 못해, 적응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
여자 외교관들을 평등하게 대접하는 규정도 미비하다. 대학입시와 관련한 특례입학 규정의 경우 대학별로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외국에 ‘부모가 함께’ 약 4년간 갔다 와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엄마만 외국에 나갈 경우 대규모 ‘기러기’ 부부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로 교육부는 부모가 모두 나가는 경우만 인정하고 있다. 여자 외교관을 차별할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차별을 받게 된 셈이다.
배우자 수당도 차별이 있다. 남자 외교관의 아내가 해외로 따라나서면 배우자 수당이 나오지만 여자 외교관은 남편과 같이 나가도 해당이 안 된다.
○ 160명 대사 중 여자는 하나
노지현 오피니언팀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