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세에 꿈 이룬 임창용의 美무대 첫해 경험
임창용(시카고 컵스)은 몸도 생각도 젊게 산다. 37세의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꿈을 이뤄낸 임창용은 요즘도 마음만 먹으면 시속 150km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진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시카고 컵스의 신고식은 더 민망했다. 시즌 막판 방문경기를 위해 이동할 때 신인 선수들은 여장(女裝)을 했다. 그것도 란제리 차림으로 비행기와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는 호텔 도착 100m 앞에 선수들을 내려줬고, 이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섹시한(?) 자태를 뽐낼 수밖에 없었다.
올해 37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루키’ 임창용(컵스)도 그 자리에 있었을까. 나이가 많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컵스 선수단은 임창용이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오랫동안 뛴 베테랑이라는 이유로 신고식에서 열외를 시켜줬다. 2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임창용은 “신고식을 시켰다면 거절 못했을 것이다. 나이 많은 게 좋을 때도 있더라”며 웃었다.
임창용은 2002년 말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했지만 65만 달러라는 초라한 금액을 제시받고 꿈을 접어야 했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활약한 그는 거액을 뿌리치고 올해 메이저리그에 재도전했다.
프로 데뷔부터 따지면 18년, 2002년부터 세면 11년의 기다림이 필요했다. 하지만 임창용은 올해 6월 25일 루키리그를 시작으로 싱글A(7월 13일), 더블A(7월 25일), 트리플A(7월 27일)를 거쳐 9월 5일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그렇게 고대하던 첫 등판은 어땠을까. 9월 8일 밀워키와의 방문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른 임창용은 “허탈했다”고 했다. “전날까지 정말 설레고 흥분됐었는데 막상 마운드에 오르니 ‘내가 이 순간을 위해 그렇게 기다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한 달가량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 “괴물은 하이라이트에만 있다”
하지만 미국 야구를 계속 경험하면서 그들에게는 2%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임창용은 “빠른 공을 가진 투수는 제구가 안 됐고, 힘 좋은 타자는 정확성이 부족하더라”고 했다.
메이저리그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TV를 보면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홈런을 펑펑 치지 않나. 그런데 막상 경험해보니 잘 치는 장면을 모은 TV 하이라이트에서만 그런 거였다. 한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에서도 한 팀에 1, 2명만 조심하면 된다. 오히려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올해 임창용은 겨우 6경기에 등판했다. 주로 패전처리로만 나섰기 때문에 승리와 패전, 세이브도 없다. 평균자책점은 5.40이다. 임창용은 “올해 몸상태는 70% 정도였다. 세게 던져도 팔꿈치에 통증이 없는 게 고무적이다. 올겨울 관리를 잘하면 내년에는 더 잘할 자신이 있다. 류현진, 추신수(신시내티) 등 잘하는 후배들한테 맞출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임창용은 올해도 시속 150km대의 직구를 종종 던졌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