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이민정책, 한국말 깜깜 외국인 며느리 키운다
그는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인천 남동구의 집에서 살림만 한다. 입국 초기에 집 근처의 교육시설을 찾아 한국어를 배워본 적은 있다. 조금 배웠지만 흐지부지 돼버렸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내년에는 일을 할 계획이지만, 마땅한 직장을 찾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 선진국 비해 느슨한 이민정책
떳떳하게 자립해 사회에 기여하며 사는 결혼이민자는 한국어를 잘 구사한다는 특징이 있다. 상대방과의 대화능력은 가정생활은 물론이고 살아가는 데 기본 요건. 많은 결혼이민자가 이웃은 물론이고 남편이나 자녀와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 이혼하는 국제결혼가정이 급증하는 이유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될까. 한국의 결혼이민자는 대다수가 입국할 때부터 언어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정착한 후에도 교육을 받을 의무가 없다.
호주, 영국, 네덜란드 등 이민선진국에서는 결혼 등 가족 간의 결합을 이유로 장기 정착을 원하는 이민자에게는 해당국의 언어와 사회를 배우는 프로그램을 이수토록 한다. 보통 400∼500시간 언어교육과 함께 법, 경제, 사회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한다.
이민선진국에서 교육을 의무화한 것은 과거 느슨했던 이민정책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경우 1970,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민자에게 지원을 해주는 데만 초점을 뒀다. 이들이 취약계층에 머물면서 복지지원에 기대자 1999년에는 사회복지예산의 절반이 이민자에게 지출됐다. 이민자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한 이유다.
○ 교육체계도 부처별 제각각
선진국은 이민전담부서가 주관해서 일원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민자 관리와 교육에 소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법무부가 2009년부터 ‘사회통합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내생활에 필요한 언어와 사회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0∼5단계를 이수하면 귀화할 때 언어와 필기시험을 면제한다. 이런 까닭에 결혼이민자뿐 아니라 유학생, 외국인 투자자 등 다양한 이민자가 사회통합프로그램을 수강하고 있다.
결혼이민자는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지 않아도 국적 취득을 신청할 때 귀화 필기시험이 면제된다. 결혼하고 한국에서 2년 이상 살았거나, 결혼 후 3년이 지나고 한국에서 1년 이상 살았다면 면접과 간단한 실태조사를 거쳐 귀화할 수 있다.
정부에선 막대한 돈을 들여 이민자의 정착을 지원한다. 문제는 많은 부처가 ‘다문화’라는 이름을 앞세워 비슷비슷한 사업을 중복해 벌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는 법무부의 사회통합프로그램과 별도로 프로그램을 마련해 한국어교육을 한다. 이 프로그램은 국적 취득과 연계되지 않아 관리가 느슨한 편이다. 한국어교육을 1∼4단계, 모두 400시간 운영하지만 실제로 모두 이수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계별 교육을 마치면 성취도평가를 실시해 총점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수료하는 시스템. 여성부는 수료 결과도 취합하지 않는다.
여성부 관계자는 “여성부의 한국어교육은 결혼이민자가 자연스레 친목을 쌓고 어울리며 배우도록 하자는 취지다. 교육을 받은 사람이 모두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김예윤 인턴기자 고려대 역사교육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