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임금인상-선택진료 폐지 요구… 병원 “올해 600억 적자… 비상체제”응급실 등 필수업무 유지됐지만… 외래진료-재활-콜센터 불편 가중입원환자 식기-수저 일회용 긴급대체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이 23일 오전 9시 반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본관 1층 로비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다. 농성 중인 노조원들 옆으로 입원 환자가 지나고 있다. 응급실 등 필수인력은 근무를 했지만 이날 파업으로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사는 이날 오전 2시경 1시간 동안 막판 실무교섭을 벌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노조 측은 임금 인상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선택진료제 및 의사성과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병원 측은 “올해 600억 원가량 적자가 예상돼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한 상황에서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며 맞서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노사, 환자 피해 최소화 노력 역부족
노사 양측은 각각 질서유지팀을 두고 환자와 방문객들에게 파업을 알리며 안내 업무를 도왔지만 불편을 막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로비에서 앰프를 통해 울리는 노조의 구호와 노동가요 탓에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귀를 막거나 인상을 찌푸리는 등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일부 진료예약을 하러 온 환자들은 노조원을 향해 “조용히 해라. 왜 건물 로비에서 농성을 해 몸도 아픈 환자들을 괴롭히느냐”고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필수유지 업무로 분류돼 있지 않은 진료예약 콜센터, 원무과, 재활의학과, 시설부 등의 근무인원 감소는 불가피해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등 전반적인 병원 운영에 차질은 피하지 못했다. 이날 입원 환자들은 종이그릇 나무젓가락 등 일회용품을 사용해 식사를 해결했다. 콜센터는 하루 종일 “모든 상담원이 통화 중이니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안내말만 반복되다 전화가 끊기기 일쑤였다. 일반병동에 입원한 최모 씨(44)는 “노조의 노래와 구호 소리에 복도가 울려 병실 밖으로 나오기도 꺼려진다. 환자들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빨리 파업이 마무리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했다. 서울대병원은 2007년 총파업 당시에도 수납 창구 대기 시간이 평소의 5배 이상 걸리는 등 환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 팽팽히 맞서는 노사
병원 측은 “노조의 주장은 근거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대병원 홍보팀 임종필 팀장은 “지난해 결산 결과 48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올해도 600억 원 내외의 적자가 예상돼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한 상황”이라며 “물품 경비 절감 및 중장기 성장동력 모색 등의 방침을 세운 것은 사실이나 검사실적을 올리라는 등 환자의 부담을 높일 지시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날 병원에서는 노조원과 비노조원 사이에 마찰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전 5시경 노조원 A 씨가 급식과 사무실에서 조리근무자의 작업복 착용을 방해하며 언성을 높였고 이 때문에 비상계획과 경비원이 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사 양측 모두 환자 불편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응급실 중환자실 등 응급 환자들에 대한 정상근무는 유지해 심각한 진료 차질이 빚어지는 의료 공백은 첫날에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장기간 파업이 진행될 경우 수술장, 투석실, 마취파트, 진단검사 및 영상검사, 환자 치료식사 파트, 분만장 등엔 환자들의 불편이 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노조는 오후 5시경 마무리 집회를 한 뒤 해산했다. 이들은 본관 로비에서 교대로 철야농성을 하다 24일 오전 10시 출정식을 열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서동일 기자, 이진한 기자·의사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