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한때 ‘앱등이’였다. ‘앱등이’는 미국 스마트기기 제조사 애플과 곤충류인 꼽등이의 합성어로 ‘골수 애플 마니아’를 낮춰 부르는 말이다. 꼽등이는 귀뚜라미와 비슷한 벌레로 2010년 7월 강원 춘천시의 한 아파트에 수천 마리가 대거 출현해 주민들을 놀라게 했다는 보도 이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즈음 한국에 출시된 아이폰을 무서운 번식력을 가진 꼽등이에 빗대 애플 마니아를 칭하는 속어가 됐다.
앱등이들은 유독 애플 제품에 대한 충성심이 강해 삼성 등 타사 제품을 ‘한 수 아래’로 취급하며 애플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애플 제품이 국내에 출시되는 날이면 유난스럽게 전날부터 행사장 앞에 길게 줄을 서 밤을 지새웠다.
기자 역시 아이폰 3GS와 아이폰 4, 아이폰 5가 나올 때마다 항상 출시 첫날 새 아이폰을 샀다. 첫날에 사지 않으면 왠지 트렌드에 뒤처지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아이패드1이 국내에 출시되기 전인 2010년 6월에는 미국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관세 10여만 원을 내면서까지 아이패드1을 들여왔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어디를 가든 일부러 손에 들고 다녔던 기억도 난다. 주변에서 “이게 아이패드냐”고 물어볼 때마다 괜스레 우월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흰색 아이패드2가 나왔을 때에도 지체없이 거금 110여만 원을 들여 하얗고 얇아진 아이패드를 손에 쥐고 흐뭇해했다.
‘진성 앱등이’였던 기자도 언젠가부터 서서히 다른 회사 스마트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폰이 점점 ‘무언가’가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폰 3GS에서 아이폰 4로 넘어갈 때만 해도 외형이 둥근 유선형에서 직각형으로 바뀌는 등 새로운 감각이 돋보였다. 하지만 이후 출시된 아이폰 시리즈는 화면이 조금 커지는 정도의 변화만 있을 뿐 별다른 혁신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번 뒤에 숫자만 바꾸고 알파벳 붙여서 새로운 것인 양 내놓았지만 기존 것과 뭐가 다른지 분간할 수 없다. 연이어 출시된 아이패드 시리즈도 성능 향상만 이뤄졌을 뿐이라 굳이 새 제품을 사야 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애플의 매력은 제품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거였다. 현대나 기아자동차가 득세하는 우리나라에서 생경한 브랜드의 외제차를 타면 돋보이듯 삼성과 LG 일변도인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감각적 디자인을 갖춘 아이폰을 손에 쥐면 내가 마치 특별한 사람이 된 듯한 ‘감성’을 안겨줬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휴대전화 세상을 열어준 아이폰은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이제는 애플뿐 아니라 다른 회사 스마트폰도 애플이 개척한 혁신의 성과를 제공한다. 굳이 애플 제품을 쓰지 않아도 각종 기능이 담긴 애플리케이션을 초고속 무선인터넷으로 즐길 수 있다. 오히려 후발주자인 삼성이 원조 격인 애플을 앞선다는 평가도 나온다.
앱등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2009년 11월 28일의 환희도 어느덧 아련한 과거가 됐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또다시 출시 전날부터 극성스럽게 줄을 서게 만들어 줄 애플 제품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막연하게 남아있는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한번 앱등이는 영원한 앱등이인 이 필자의 마음을 애플은 지켜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