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례(1955∼)
네 비행기 날아가고
지금쯤 구름 속에 있겠다
바다 위에 떴겠다
드디어 땅바닥에 닿았겠다
대신 네 호흡인 구름에게
푸른 사과와 붉은 사과가 있다고 전한다
좌판에 푸른 사과와 붉은 사과
서로의 볼을 맞대고 있다고
내 앞에 트럭이 지나간다고
굵은 대파가 책처럼 높다랗게 쌓였고 밧줄에 묶였고
뿌리는 뿌리끼리 푸른 잎은 잎끼리
서로가 서로를 꽉 채우고 빈틈 하나 없이 저렇게
묶여 실려간다고
허공 속의 공책에
사과를 사과나무를
다 마셔버리고 싶다고 쓴다
사과나무 한 채를 다 마시고
지금쯤은 구름 속인지 바다 위인지 땅바닥인지
좌로 꺾인 하얀 화살표 따라간다고 쓴다
희망은 난폭해서
날마다 쫓기며 가보게 한다고
그 사람을 배웅하고 공항을 나온다.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지금 어디쯤 지나가겠지’ 마음은 내내 항로를 따라간다. 시간이 또 지나 ‘아, 지금쯤 도착했겠다’ 생각하자 그 닿을 수 없는 거리가 가슴에 사무친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진할수록 떨어져 있는 거리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화자는 혼자 걸으면서 휘몰아치는 별별 느낌과 생각을 비행기를 타고 떠난 그 사람, 허공에 대고 전한다. 좌판에 빨간 사과 푸른 사과가 섞여 있는 것도 ‘그런가 보다’ 하지 않고, 두 빛깔 사과가 ‘서로의 볼을 맞대고’ 있단다. 굵은 대파가 가득 실린 트럭이 지나간단다. 옴짝달싹 못하게 운명에 묶여 어디론가 실려 가는 우리 인생이다. 그러니 희망은 난폭한 것, 삶은 난폭한 것!
살다 보면 목적지를 잃고 길에 누워 있는 화살표대로 걷게 될 때가 있다. 시의 정황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잘 짜여 있다. 주체 안 되는 감정을 격정에 실어 토로하는 최정례 시의 말맛!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