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사꾼들/신동일 지음/368쪽·1만6800원/리더스북열정으로 사업 일군 17인의 체험담
왼쪽부터 독립 브랜드 카페를 차린 고인규 씨와 꼬치구이 전문점을 운영하는 김윤규 씨, 쌀국수 식당 주인인 신관철 씨. 세 ‘사장님’은 나이도 배경도 출신도 다르지만, 오랫동안 창업을 꼼꼼히 준비하고 고객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은 모두 장사꾼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손님을 만족시키는 영업 자체에서 일의 보람을 찾는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리더스북 제공
얄궂다. 프롤로그에서 처음 마주하는 문장이 협박인가. 그런데 이 글귀가 마음에 안 드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실직. 피고용자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 더러워서 때려치운다. 이런 생각 한 번쯤 안 해본 직장인이 있을까. 더 서글픈 건 더러워도 다니려는데 회사가 밀어내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자의건 타의건 자기 사업을 꾸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세상이다.
그런 와중에 유명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에서 최우량고객(VVIP) 자산관리팀장을 지낸 저자가 돈 잘 버는 ‘장사꾼’의 노하우를 들려주겠다는데 귀가 쫑긋 서는 건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 그리고 이 저자, 지난해 출간한 ‘한국의 슈퍼 리치’에서 초고액 자산가들을 밀착 인터뷰해 상당한 화제를 모았었다. 그래 나도 사장 한번 되어 보자.
‘나라화방’의 신문균 사장을 보자. 이 가게는 그림이나 상장의 액자를 만들어 주는 곳이다. 딱 들어봐도 사양산업이다. 실제로 신 사장도 종업원으로 일하던 가게가 외환위기 때 부도 위기에 몰려 망하다시피 했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위기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다들 기피하는 업종이니 더 치고 나갈 기회가 생긴다고 봤다. 신 사장이 자신만의 무기로 삼은 전략은 한 번 오면 다시 찾는 단골 만들기였다.
장사에서 단골 확보야 당연한 목표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는 매우 뻔한 ‘정도’를 택했다. 조그마한 액자 하나도 진심을 담아 만드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 여성 고객이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딸아이 방에 그림을 걸어 주고 싶다고 찾아왔다. 몇 푼 안 되는 주문이었지만 사장은 방을 찍은 사진을 받아 놓고 자신의 딸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였다. 알고 보니 그 고객은 강남에서도 꽤나 발 넓은 이였고, 자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단골과 인연을 맺어 주는 디딤돌이 됐다.
물론 삐딱하게 보자면, 성공했으니 다 미화되고 교훈이 되는 건 사실이다. 책에 등장하는 업주들도 대다수가 과거 한두 번 망해 본 경험을 갖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영업자 가운데 85%는 살아남지 못하고 폐업한다는데, 성공엔 어쩌면 운이 더 작용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몇몇은 안정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말하기엔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책은 현실감이 더 넘친다. 이룰 거 다 이룬 사업가의 회고가 아니라 오늘도 동시대에서 1분 1초를 치열하게 살고 있는 장사꾼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부지런해야 하고, 남들과 달라야 하고, 결단력을 갖고 냉철해져야 한다는 다소 식상한 교훈들은 잠시 잊자. 장사를 하고 싶은가. 자신의 사업을 갖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들처럼 철저하게 절박해지라. 살아남겠다는 절박함이 없는 한 이 치열한 세상은 버틸 수 없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