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맑음. 계절의 괴랄. #80 9와 숫자들 ‘눈물바람’ (2012년)
밴드 ‘9와 숫자들’의 멤버인 3(유병덕), 4(이용), 0(유정목), 9(송재경·왼쪽부터). 파고뮤직 제공
‘괴랄’이 사전에 안 나온다고? 내 사전에 쓰레기 단어란 없다. 갖가지 속어를 모셔 둔 휴지통을 비우기는커녕 신줏단지처럼 아껴 버리니까. 인터넷 언어 ‘괴랄하다’는 ‘괴이하며 신랄하다’ ‘괴이한데 발랄하다’ ‘괴이하고 지랄맞다’ ‘괴물 같이 아스트랄(astral·영적인)하다’를 두루 뜻하는데, 그 어감부터가 형언할 수 없이 괴랄맞다. 한글날 잘 쉬어 놓고 미안.
한국 추위만큼 한국 남자 맘 잘 도려낼까. 오로라 보러 북극에도 가 봤지만 거기 추위도 별 거 없다. 요즘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0도 가까이 내려가니 신한불이(身寒不二)의 이 괴랄맞은 한국 겨울처럼 괴랄한 노래 하나 떠오른다. 찬바람 신(神)을 향한 찬송가, 9와 숫자들의 ‘눈물바람’ 말이다.
짐작처럼 9와 숫자들의 멤버들은 숫자를 예명으로 삼았다. ‘0’(본명 유정목)의 전자기타와 고경천(객원 연주자)의 키보드가 형성하는 성긴 듯 시린 공간감은 ‘작은 아픔도 난 참을 수 없어/슬픔을 난 이길 수 없어’의 크레센도를 타고 후렴구로 난다.
‘언제부턴가 내 등 뒤론/자꾸 시린 바람이 따라붙어…’의 후렴구에 이르면 ‘9’의 보컬은 가성으로 풀어헤쳐진다. 여러 개의 기타 줄에서 뛰쳐나와 찌그러져 뒤섞이는 음향의 바람결은 마침내 전류가 통한 전자석의 극을 향해 서릿발처럼 일어서고 나약한 보컬은 거기 한데 섞여 실 가닥처럼 부양한다. 이게 귓전에 부는 찬바람의 레시피다. ‘…도망쳐 봐도 이미 내 눈은/함빡히도 젖어있었네.’
계절이 이쯤에 닿으면 밴드 줄리아하트의 미니앨범 ‘B’(2010년)도 스웨터처럼 꺼내 두고 싶어진다. 첫 곡 ‘하얀 마법 속삭임’부터 마지막 곡 ‘한국소녀의 겨울’까지를 차가워진 야윈 몸에 뒤집어쓴다.
‘술은 달콤하고 숨은 가볍고/계절의 선물은 오직 하나뿐/오래 전 이맘때쯤 태어난/서울의 彼女(피녀)’(‘한국소녀의 겨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