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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스산한 계절… 내 마음 도려내는 ‘9와 숫자들’

입력 | 2013-10-28 03:00:00

2013년 10월 27일 일요일 맑음. 계절의 괴랄. #80 9와 숫자들 ‘눈물바람’ (2012년)




밴드 ‘9와 숫자들’의 멤버인 3(유병덕), 4(이용), 0(유정목), 9(송재경·왼쪽부터). 파고뮤직 제공

한국의 가을 겨울은 정말 괴랄(怪剌)맞다.

‘괴랄’이 사전에 안 나온다고? 내 사전에 쓰레기 단어란 없다. 갖가지 속어를 모셔 둔 휴지통을 비우기는커녕 신줏단지처럼 아껴 버리니까. 인터넷 언어 ‘괴랄하다’는 ‘괴이하며 신랄하다’ ‘괴이한데 발랄하다’ ‘괴이하고 지랄맞다’ ‘괴물 같이 아스트랄(astral·영적인)하다’를 두루 뜻하는데, 그 어감부터가 형언할 수 없이 괴랄맞다. 한글날 잘 쉬어 놓고 미안.

한국 추위만큼 한국 남자 맘 잘 도려낼까. 오로라 보러 북극에도 가 봤지만 거기 추위도 별 거 없다. 요즘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0도 가까이 내려가니 신한불이(身寒不二)의 이 괴랄맞은 한국 겨울처럼 괴랄한 노래 하나 떠오른다. 찬바람 신(神)을 향한 찬송가, 9와 숫자들의 ‘눈물바람’ 말이다.

어리숙한 목소리로 촌스럽게 음절을 튀겨 내는 ‘9’(본명 송재경)의 보컬은 소박한 기타 연주에 맞춰 김창완(산울림)처럼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긴다. ‘울어버릴 거예요, 난. 이유는 묻지 마요./그대랑은 상관없으니까요./잠들어버릴 거예요, 난. 너무 졸려서/오늘밤엔 꿈도 못 꾸겠네요.’

짐작처럼 9와 숫자들의 멤버들은 숫자를 예명으로 삼았다. ‘0’(본명 유정목)의 전자기타와 고경천(객원 연주자)의 키보드가 형성하는 성긴 듯 시린 공간감은 ‘작은 아픔도 난 참을 수 없어/슬픔을 난 이길 수 없어’의 크레센도를 타고 후렴구로 난다.

‘언제부턴가 내 등 뒤론/자꾸 시린 바람이 따라붙어…’의 후렴구에 이르면 ‘9’의 보컬은 가성으로 풀어헤쳐진다. 여러 개의 기타 줄에서 뛰쳐나와 찌그러져 뒤섞이는 음향의 바람결은 마침내 전류가 통한 전자석의 극을 향해 서릿발처럼 일어서고 나약한 보컬은 거기 한데 섞여 실 가닥처럼 부양한다. 이게 귓전에 부는 찬바람의 레시피다. ‘…도망쳐 봐도 이미 내 눈은/함빡히도 젖어있었네.’

계절이 이쯤에 닿으면 밴드 줄리아하트의 미니앨범 ‘B’(2010년)도 스웨터처럼 꺼내 두고 싶어진다. 첫 곡 ‘하얀 마법 속삭임’부터 마지막 곡 ‘한국소녀의 겨울’까지를 차가워진 야윈 몸에 뒤집어쓴다.

‘술은 달콤하고 숨은 가볍고/계절의 선물은 오직 하나뿐/오래 전 이맘때쯤 태어난/서울의 彼女(피녀)’(‘한국소녀의 겨울’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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