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문화부 기자
11년 전 한 친구가 전해온 그 어머니의 말이다. “네가 빌려준 영화 리뷰잡지 죽 한 번 넘겨보고 그러시더라.”
1000자 안팎 리뷰기사 작성에는 최소 반나절이 필요하다. 왔다갔다 관람하는 시간, 끙끙대는 시간, 쓰는 시간. 가끔 생각한다. 한 번 죽 내려 읽는 데 3분도 걸리지 않을 이 리뷰를 그 친구의 어머니가 읽으면 뭐라 하실까. “만날 쓸데없는 글 읽던 그 녀석 결국 비슷한 글 쓰면서 사는구나.” 두렵다.
독자 또는 관객이 아닌 공연 관계자 입장에서 리뷰의 효용에 대한 판정 기준은 명확하다. “짜릿한 밤이었다.” “찬란한 순간!” “지금껏 만나보지 못한 감동.” 프로그램 북에 인용된 문구만 읽으면 볼만하지 않은 공연은 하나도 없다.
“보고 나서 별로다 싶으면 그냥 리뷰 쓰지 마라.” 공연 담당을 맡은 뒤 4개월 동안 숱하게 들은 당부다. 그러려니 넘기려 해봤지만 마음 한구석에 돌부리처럼 남는다. 그렇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 객석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다가 종종 당혹스러워진다.
뮤지컬을 처음 본 건 초등학생 때였다. 학교에서 단체로 가서 관람한 ‘애니’ ‘아가씨와 건달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저작권 확보 없이 베껴 만든 공연이었지만 그럭저럭 흥겨웠다. 그러다 고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용돈을 털어 ‘맨 오브 라만차’ 티켓을 샀다. TV에서 본 피터 오툴 주연의 같은 제목 영화 마지막 장면의 저릿한 노래에 대해 떠들며 뒷자리 친구를 꼬드겨 동행으로 삼았다. “꿈, 이룰 수 없는 꿈….” 무대 위 돈키호테는 끝내 음정을 붙들지 못했다. 차마 들어줄 수 없어 도중에 빠져나와 감자튀김을 하나 사서 나눠 먹었다. 그 뒤 다시는 뮤지컬을 보러 가지 않았다.
볼 낯 찾을 길 없었던 그 친구가 지금 내 리뷰기사의 무게중심이다. “기자가 뭘 아느냐”며 간혹 대놓고 이야기하는 배우들에게 대꾸하고 싶다. 나는 연기나 연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부정확한 발음과 버성긴 스토리 전개에 대해선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리뷰로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그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다. 평가처럼 써서도, 읽혀서도 곤란하다. 그렇게 믿는다.
손택균 문화부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