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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일자리 리스타트]경력단절 여성들 “다시 일하고 싶지만…”

입력 | 2013-10-29 03:00:00

입사성적 상위권 휩쓸었던 그녀들… 30대에 ‘직업주부’로




《 “음, 나이가 너무 많네요. 근무 환경이 많이 달라져서 적응하기 힘들 텐데요. 육아 문제로 힘들어지면 다시 일을 그만두게 되지 않겠어요?” 재취업을 준비하는 주부 김상희 씨(40·서울 송파구 잠실동)는 최근 면접을 보러 갔다가 면접관의 시큰둥한 태도에 고개를 떨궜다. 결과는 불합격. 5년 전까지 중견 무역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제법 인정받던 ‘김 과장’은 이력서에서 사라지고 이제 ‘아줌마’만 남았다. 김 씨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 일을 그만뒀는데 다시 일하려고 하니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사회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속이 상해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5∼54세 기혼 여성 974만7000명 중 20.3%인 197만8000명은 결혼, 육아, 임신·출산 등의 이유로 일을 그만둔 상태였다. 이에 따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1년 48.8%에서 지난해 49.9%로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 커리어우먼들, 30대에 대거 노동시장서 이탈

지난해 한국의 연령대별 여성 고용률은 20대 후반(25∼29세) 71.6%에서 30대 초반(30∼34세) 56.4%로 급락했다가, 40대 후반(45∼49세)에야 67.7%까지 회복되는 ‘M자형’ 곡선을 보였다. 반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률 상위 13개국들은 20대 후반 74.4%에서 40대 후반 80.5%까지 꾸준히 상승했다가 50대부터 하락하는 ‘역U자형’ 곡선을 나타낸다. 신입 구직시장에서 입사성적 상위권을 휩쓴 한국의 젊은 여성들 다수가 30대에 출산, 육아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직업주부’가 되는 것이다.

두 아이의 엄마 박모 씨(34)가 그런 사례다. 지난해에 갓 돌이 지난 둘째를 돌봐주던 시어머니가 암으로 쓰러지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낮에 언니에게 아기를 맡기고 ‘칼퇴근’하며 일과 육아를 함께 했지만 버티기 힘들었다. 회사 눈치 때문에 육아휴직을 하기도 어려웠다. 박 씨는 “할 수 없이 직장을 그만뒀지만 다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커리어우먼에서 전업주부로 신분이 바뀌면 남편과의 ‘권력관계’도 달라진다. 대기업에 다니다 사내커플로 결혼한 이모 씨(38)는 예전엔 남편보다 직급도 높고 연봉도 더 많았다. 5년 전 딸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둔 이후 남편은 갈수록 사회적 지위가 상승했지만 이 씨는 제자리걸음이다. 이 씨는 “남편이 언젠가부터 ‘네가 사회생활을 아느냐’는 식으로 무시할 때면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고 토로했다.

○ 육아와 병행 어려운 ‘전일제’ 일자리의 벽

경력 단절 여성이 다시 사회로 복귀하려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육아다. 전일제(全日制) 일자리를 찾자니 자녀 양육과 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짧은 근로시간을 선호하다 보니 고용 상태가 불안하고 임금이 낮은 일자리로 재취업이 이뤄지는 일이 많다.

중견기업에 다니던 김모 씨(42·여)는 둘째를 낳고 일을 그만뒀다가 생계가 어려워 지난해에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다시 일터로 나섰다. 아이를 낳기 전 월급은 300만 원 정도였지만 지금은 예전의 절반도 안 된다. 김 씨는 “다시 번듯한 일자리를 찾고 싶지만 도저히 아이들을 돌보며 일할 방법이 없었다”고 푸념했다.

설사 어렵게 재취업에 성공해도 일과 가정을 함께 돌보는 일은 여전히 버겁다. 이모 씨(38·여)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회사 출근시간을 간신히 맞추고, 오후 6시에 일어서는 ‘땡순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무능한 직장인으로 비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육아와 병행할 만한 만족스러운 일자리가 많지 않다 보니 재취업 여성의 절반 정도는 다시 그만두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1년 재취업에 성공해 고용보험에 가입했던 여성 근로자 7만1360명 중 51.8%인 3만6988명이 6개월 이내에 고용보험을 해지했다.

○ 양질(良質)의 시간제 일자리가 해법

교육 수준이 높은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OECD는 지난해 ‘성별 격차 해소’ 보고서에서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남성 수준으로 오른다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030년까지 연평균 0.9%포인트씩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력 단절 여성들을 노동현장으로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고용이 안정되고, 일할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와 함께 출산·육아·가사 부담을 거의 전적으로 여성들이 떠맡고 있는 현실도 바뀌어야 한다.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원하는 여성은 많지만 아직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고학력, 고숙련 여성들이 사회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이 손을 잡고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 한국선 은퇴뒤에 금전적-사회적 절벽 직면…
연금받는 65세까지 ‘징검다리 일자리’ 절실 ▼

노동시장서 소외된 베이비부머

중소기업에서 부장으로 재직하다가 2011년 정년퇴직한 박모 씨(57)는 아직 제2의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30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왔으니 잠시 재충전을 한 뒤 일을 알아봐야지’ 하고 생각한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1년쯤 지나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허드렛일 말고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었다. 그는 “변변한 여가도 없이 하루 종일 일하다가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은퇴’란 그 순간 금전적으로, 사회적으로 거의 모든 관계에서 떠나는 ‘절벽 형태’다. 그래서 베이비부머 등 중장년층은 경력단절 여성만큼이나 일자리가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들 역시 노동시장의 소외계층에 속해 있다. 이들에게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주어진다면 제2의 인생을 준비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기반이 될 것이다.

2015년까지 약 53만 명의 베이비부머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98만 명의 베이비부머가 추가로 은퇴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경로는 드물다. 연금을 받으며 완전히 은퇴할 수 있는 65세까지 중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중장년층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일과 생활의 균형’이란 관점에서 전 생애에 걸친 고용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일과 여가의 비중, 수입과 지출의 수준을 단계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괜찮은(descent)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퇴직이 칼로 베듯 일과 단절되는 사건이 아니라 ‘서서히 노동시장을 빠져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고용연장, 재고용, 시간제 근무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통해 점진적인 은퇴전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중현 소비자경제부 차장 sanjuck@donga.com
▽소비자경제부 김현진 김유영 기자
▽경제부 박재명 기자
▽사회부 이성호 김재영 기자
▽국제부 전승훈 파리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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