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의 개념을 정립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가정신이 ‘자본주의의 정수(精髓)’로 추앙받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자본주의의 지나친 성공이 자본주의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한계급 지식인층이 대거 등장해 소득분배 사회정의 공해 등 자본주의의 취약한 도덕적 기반을 공격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의 예언은 빗나갔지만 그가 지적한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기업가정신 주간’(10월 28∼31일)을 맞아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업인의 82%가 “기업가정신이 위축됐다”고 답했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가 발표한 기업가정신지수(GEDI) 순위에서도 한국은 43위로 오만과 칠레보다 뒤졌다. 기업을 옥죄는 규제들, 기업인을 죄인 취급하는 정치, 반(反)기업 정서 등이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킨다는 분석들이 경제단체들을 중심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해법은 학자마다 다르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나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같은 이는 한국 경제가 이미 고도화돼 규제를 푼다고 대기업들이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말한다. 양극화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을 키우는 경제민주화가 기업가정신을 높이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우리 역사에서 기업가정신에 투철했던 사람들로 개성상인을 꼽는다. 상인을 천대하던 분위기 속에서도 이들은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을 하며 홍삼 제조업까지 했다. 개성상인들은 아무리 부자라도 고기 굽는 냄새를 담장 밖까지 넘기는 사람에겐 손가락질을 했다는 일화를 남겼다. 물건을 속여 팔거나 폭리를 취하면 강하게 제재했지만 손해를 본 동료에게는 담보 없이 자금을 대주었다고 한다. 이런 개성상인의 정신을 살린다면 슘페터의 걱정도 기우(杞憂)가 되지 않을는지.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