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 부끄러운 보험 들기… 국정원 치열한 반성이 없다국내 파트와 대공수사권 폐지는 현실 무시한 단견국정원장 임기제로 정치적 중립 보장해야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국정원 댓글 사건도 정권 교체기마다 나타나는 보험 들기의 전형이다. 이번엔 칙칙한 정보를 담은 문서 보따리가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신기술을 보험료로 낸 것이 과거와 달라졌다. 원세훈 원장과 몇몇 간부는 박근혜 후보 쪽에 보험을 들었고, 이것을 야당에 일러바친 전현직 국정원 직원은 문재인 후보 쪽에 줄을 선 것이다.
국정원법 9조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인에 대해 지지, 반대, 찬양, 비방하는 내용의 의견 또는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국정원 직원이 이 조항을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진다. 정치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이 엄연히 살아 있음에도 심리전국 직원들은 ‘대선후보 기호 1번 대한민국, 기호 2번 북조선인민공화국’ 같은 트위터 글을 올렸다. ‘후보들의 인상 착의-박근혜의 친근한 미소-안철수의 느끼한 능구랭이 얼굴’이라는 트위터 글도 국정원 직원의 창작품이다. 국가 정보기관이 이런 짓을 해놓고 “건수가 검찰 발표보다 적다” “직접 쓴 트윗보다 남의 글을 옮긴 리트윗이 많다” 같은 변명을 하는 것은 아직도 반성이 모자란다는 뜻이다.
모사드와 달리 남산 정보부와 안기부는 선거 개입과 정치공작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갖고 있다. 권위주의 정권 시대는 새삼 거론할 필요도 없고 민주화 이후인 김영삼 정부 때도 ‘미림팀’이라는 국정원 조직이 감시대상 인사들의 약속장소를 사전에 알아내 도청 마이크를 붙이고 다녔다. 김대중 정부 때의 국정원장 두 명은 도청과 관련해 노무현 정부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정원장이 구속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대통령 임기 5년 동안에 국정원장이 서너 명 교체되는 시스템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 모사드 국장의 임기는 평균 6년이 넘고 9년, 10년 근무한 사람도 여럿이다. 조지 테닛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7년 1월 CIA 국장으로 임명됐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유임돼 7년 6개월 동안 재직했다. 최장수 기록인 8년 9개월을 근무한 앨런 덜레스는 국내 정치 불개입의 전통을 확립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폐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국정원이 4대강 사업 홍보에까지 끼어들지 못하도록 활동을 제약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국내파트 완전 폐지는 신중하지 못한 견해다. 미국은 9·11테러로 약 3000명이 희생된 후 해외와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을 설립했다. 테러나 안보 위협에 국내와 해외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대공 정보수집과 수사도 따로 떼어낼 일이 아니다. 대공수사권을 유지해 이석기 의원 사건 같은 것을 캐낼 수 있게 하되 남용을 막고 인권 침해를 방지하는 장치를 강화하면 될 것이다.
집권 10년 동안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해놓지 않은 야당도 큰소리칠 자격이 없다. 108만 표의 차이는 국정원 심리전국이나 군(軍) 사이버사령부가 아니라 야당의 희미한 안보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여야 공히 ‘대선의 추억’에서 빠져나와 국정원을 모사드 같은 기관으로 환골탈태하는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