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수능은 12년간 달려온 레이스를 단 하루에 평가받는 절차이므로 사실 실력뿐만 아니라 운이 중요하다. 시험 당일의 컨디션, 배점이 높은 문항에 자신이 아는 내용이 얼마나 나오는지, 고사장 스피커의 음질 등등 변수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옆자리에 앉은 수험생이 코를 킁킁거려도 영향을 받는다.
올해 수능은 이런 차원을 넘어선다. 국어 수학 영어 3과목 모두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가운데 하나를 골라 치러야 하는 선택형 수능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치르는 해이기 때문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비교육적(?)인 용어가 자꾸 떠올라 민망할 지경이다.
최근 만난 입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수시모집 원서도 겨우 썼는데 정시 원서는 더 어림짐작으로 쓰게 생겼네. 애들 볼 면목이 없어.”(서울 일반고의 진학지도 20년 차 교사)
“올해는 수능 가채점이 끝나도 배치표를 못 만들 것 같아요. 이러다 입시 다 끝나고 배치표를 싹 뜯어고쳐야 할지 몰라요.”(재수종합학원의 입시 상담 전문가)
“솔직히 내년에는 어떤 애들이 들어올지 전혀 감을 못 잡겠어요. 작년이랑 비교할 수도 없고….”(서울 상위권 대학의 입학처장)
가뜩이나 입시 제도에 대한 불신이 깊은 마당에, 올해는 로또라 불리는 선택형 수능에 따른 입시 결과가 나오면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재수, 삼수 대열로 뛰어들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정부에서 선택형 수능을 주도한 고위 정책결정자들은 여전히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정책실명제가 없으니 수능 날에도 발 뻗고 자지 않을까 싶다. 희생양이 된 수험생과 학부모만 불면의 밤을 이어갈 것이다. 일주일 뒤 고사장에 앉아 있을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 대신 행운을 빈다고 해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기만 하다.
김희균 교육복지부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