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마라톤모임(광마모)’ 회원들이 26일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서울 잠실의 탄천변을 달리고 있다. 2001년 출범한 ‘광마모’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라 풀코스를 5회 이상 완주한 고수이면서 봉사 정신이 투철한 마라토너들이 가입할 수 있는 단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2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제94회 전국체전 육상 여고부 포환던지기에서 15.21m를 던져 여고부 한국신기록으로 우승한 한국판 ‘여자 헤라클레스’ 이미나(18·이리공고)에게는 사실 올해가 최악의 해로 남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암으로 8월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파킨슨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방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버텼던 배경엔 ‘광마모’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인 2007년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을 돕는 ‘달려라 하니’ 프로그램을 통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은 ‘광마모’의 따뜻한 분들을 생각하면 방황은 사치였다. 힘들고 외로웠지만 ‘광마모’가 있어 든든했다. ‘광마모’ 회원들은 이번 전국체전 때도 경기장을 방문해 격려와 박수를 보냈다. 이미나는 전국체전 3연패 등 소년체전을 포함해 체전에서만 8연속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 참여-헌신의 ‘광화문마라톤모임’
‘광마모’ 회원이 되기 위해선 소문이 잘 나야 한다. 혼자 잘 달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풀코스를 5회 이상 완주한 마라톤계의 고수이면서 봉사정신이 투철한 달림이들을 전국 각지에서 추천받아 회원으로 뽑는다. 추천을 받는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6개월 인턴 기간을 둔다. 이 기간 봉사 상황을 체크한 뒤 최종 낙점한다. 매년 기수별 회원을 모집해 올해 14기까지 483명을 모았다. 회장도 봉사를 통해 조화와 화합을 이룬다는 의미가 담긴 ‘코디(코디네이터)’로 부른다. 임기는 딱 1년. 한택운 2013년 코디(57)는 “우리 동호회의 목적은 처음부터 끝까지 봉사와 자선이다. 회원들이 그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마모’는 수도권과 영남, 호남, 제주, 충청, 강원 등 6개 권역으로 나뉘어 서로 협력하면서도 독자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작은 단순했다. 좀 더 잘 달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앞에서 끌어주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마라톤 풀코스는 아무리 훈련을 잘해도 웬만해선 완주하기 힘들다. 달리다 포기하는 사람을 지켜본 뒤 ‘우리가 도와보자’면서 시작한 게 페이스메이커였다. 올해만 현재까지 86개 대회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페이스메이커는 물론이고 주로에서 위급상황 때 도움을 주는 레이스패트롤까지 함께 하고 있다.
도움과 봉사는 양성 바이러스 같다. 전이가 쉽게 된다. 한번 도움을 주기 시작하자 회원들은 자연스럽게 좀 더 의미 있는 봉사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2001년 5월부터 십시일반으로 장애인들에게 마라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음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는 데서 즐거움을 찾았다.
발달장애 2급 판정을 받은 전병혁 씨(앞)가 서울 잠 실종합운동장 옆을 달리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처음부터 ‘하트’에 참여한 전미라 회원(55)은 “남을 의식하지 않던 아이들이 경쟁을 하고 우리를 가족같이 대하는 것을 보고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마라톤을 마친 뒤 열린 100m 인터벌 훈련. 전병혁 씨는 동갑내기 김민철 씨와 서로 1등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경쟁했다. 김 씨가 몇 번 이기자 전 씨는 풀이 죽은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전 씨는 “풀코스는 내가 더 잘한다. 내년 내 목표는 동아마라톤에서 3시간28분30초 안에 달리는 것이다”라며 웃었다. 전 씨는 마라톤을 통해 장애가 크게 호전돼 서울장애인복지관 보호작업장 파닉스에서 빵 만들기를 배우고 있다. 마라톤 훈련 등도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니며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다.
식사 조절을 하지 못해 뚱뚱해진 발달장애 아이들이 운동을 통해 살이 빠지고 건강해지자 체중계에 올라서며 몸무게를 체크하고 먹는 것도 조절할 줄 알게 됐다. 전 씨의 어머니 김은경 씨(50)는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알게 돼 정말 기쁘다. 힘든 것을 참고 이기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하트’의 전병혁 송하승(23) 주정훈(24) 김상영(22) 씨는 19일 경기 의정부에서 열린 제7회 전국어울림마라톤대회에 출전해 각각 1, 2, 4, 5위에 입상했다.
○ 어려운 환경 속 운동선수들 후원도
‘하니’는 1년에 4만 원인 회비와 ‘1회원 하니 1계좌(월 5000원) 갖기 운동’, 바자회 등을 통해 모은 기금을 사용한다. 페이스메이커를 하면 대회 참가비가 면제되는 것을 감안해 대신 1만 원씩을 후원금으로 내기도 한다. 매 대회 20∼30명이 참가하니 20만∼30만 원을 모으고 있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협찬도 이어진다. 지금까지 하니에 쓴 돈만 약 1억 원이다. ‘광마모’는 또 2002년부터 ‘독거노인에게 사랑과 희망을’이란 돕기 행사를 매년 하며 약 1억 원을 홀몸노인들에게 지원했다. 2004년부터는 소아암 환우 돕기 마라톤대회에 참여하며 대회 운영을 돕고 있다.
○ “돕는 즐거움, 이렇게 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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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이 모여 강이 되고 강이 바다가 되듯 ‘광마모’의 작은 봉사가 사회를 밝게 밝혀주고 있다. 서로 돕고 봉사하며 살자는 아주 단순한 모토를 내세운 ‘광마모’는 28일 서울시봉사상 단체 우수상을 받았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