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대책
한동안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허 씨는 2011년 개인파산제도를 통해 빚을 탕감받았고 지난해 4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재창업지원자금 1억 원을 종잣돈으로 이어폰을 만드는 작은 회사를 새로 차려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나처럼 운 좋은 기업인은 극소수”라며 “연대보증에 묶여 평생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창업가가 아직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창업가들에게 무거운 연대보증 책임을 지워 재기를 막는 폐해가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5개 부처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지원할 때 연대보증 책임을 면제하는 기업을 크게 늘리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우선 중진공은 연내에 ‘가산금리 조건부 연대보증 면제제도’의 대상 기업 요건을 ‘SB등급(4등급)’에서 ‘SB-등급(5등급)’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연대보증 면제 대상 중소기업은 236곳에서 2028곳으로 늘어난다. 면제 대상 기업은 연대보증 책임 없이 0.4∼0.8%포인트의 추가금리를 부담하면 중진공의 창업기업지원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신보와 기보도 우수한 기술 또는 건전한 기업가 정신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대해 연대보증을 면제해줄 방침이다. 기보는 2005년부터 기술평가 등급과 재무상태 등을 따져 우수한 기업에 연대보증을 면제해주고 있지만 평가가 지나치게 까다로워 지금까지 혜택을 받은 기업은 10곳에 그쳤다. 노용석 중기청 재도전성장과장은 “이제 막 창업한 기업이 기존 제도의 혜택을 받기에는 너무 기준이 높았다”며 “금융위원회에서 올해 안으로 구체적인 지원 대상과 방식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우수 인력의 창업을 활성화하고 실패한 기업인이 재도전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부실화한 기업의 상태를 진단해 되살리거나 퇴출시키는 프로그램과 한 번 실패한 기업인의 재도전을 돕는 지원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부실 위기에 놓인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정책금융기관과 시중은행이 협업해 기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맞춤형 처방을 내리는 ‘구조개선 심층진단 및 맞춤형 연계지원’ 사업을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은행의 사전채무조정(프리 워크아웃) 또는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 중소기업이 주채권 은행의 추천을 받아 지방 중기청과 중진공 지역본부 등에 신청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
‘신속회생절차’를 도입해 평균 9개월이 걸리는 회생절차 소요기간을 4개월로 줄이는 방안도 마련했다. 길고 복잡한 회생절차 때문에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도산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재창업 기업인에게도 실패 원인 분석부터 사업화 자금, 마케팅 등을 일괄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그동안 신용불량자나 세금 체납자는 정부의 창업지원 사업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50억 원 규모의 재창업기업 전용 기술개발자금도 새로 마련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연대보증 면제 조치가 민간 금융회사가 아니라 정책금융기관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연대보증 개선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며 “보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경 기자 whalefish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