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아저씨’ ★★☆
정갈하게 마름질한 무대와 의상을 뜯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느껴지는 아쉬움이 그 재미만큼 크다. 명동예술극장 제공
26일 막을 올린 연극 ‘바냐아저씨’의 무대는 그 채팅 방을 닮았다. 등장인물 9명이 제각각 분주하다. 시선은 대화의 흐름과 무관하게 이리저리 쪼개진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기보다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다. 매부의 명망을 삶의 낙으로 여기고 살아온 영지 관리인 바냐의 신세한탄, 은퇴하고 젊은 새 부인 엘레나와 함께 영지로 찾아온 매부 세례브랴코프의 신세한탄, 남자들의 시선 속에서 가냘픈 자존감을 세우려 하는 엘레나의 신세한탄.
‘바냐아저씨’는 ‘벚꽃동산’ ‘세 자매’ ‘갈매기’와 함께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 명망에 대한 경외감을 시선에서 치워낸 관객에게 이 공연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컨디션 나쁜 날이었을까. 27일 오후 배우들이 내놓은 대사는 낙엽처럼 무대 위를 힘없이 굴러다녔다. 어긋나게 맞물리는 일상의 대화를 보여주려 한 작가의 의도라 보기 어려웠다. 이야기의 불안감보다 입에 온전히 붙지 않은 채 나열되는 대사들로 인한 불안감이 더 컸다.
고전은 응당 존중받을 까닭이 있다. 그러나 114년 전 쓰인 글을 무대 위에 다시 풀어내는 작업에는 이야기 자체가 지닌 가치를 제외한 다른 까닭이 필요하다. “우리의 모든 고통이 연민 속에 잠겨 가는 걸 보게 될 거예요.” 결말부 바냐의 조카 소냐의 대사는 그저 설익은 감상의 한탄으로 들린다. 그런 불쾌감 역시 연출의 의도였을지. 갸우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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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열 연출, 백성희 이상직 한명구 박윤희 황정민 정재은 이지하 출연. 11월 24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