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생명보험은 어떻게 진화해 왔나
2008년 5월 일본에서 보험 가입과 보험금 지급을 모두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인터넷 생명보험사 라이프넷과 넥스티아가 영업을 시작했다. 라이프넷은 설립 4년 만에 15만 건의 보험 계약을 하며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인터넷 생명보험이 설계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일본 보험시장의 지각변동을 몰고 왔다.
한국 보험 시장에도 변화가 시작됐다. 2013년 10월 30일 금융위원회는 교보생명과 일본 라이프넷이 합작한 온라인 생명보험사인 ‘교보라이프플래닛생명보험’에 보험업 허가를 내줬다. 여기서 파는 보험 상품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다. 보험금 지급을 신청하는 것도 인터넷을 통해 이뤄진다.
1962년 보험업법 제정 이후 국내 최초로 인터넷 전용 생명보험사가 탄생했다. 설계사 없는 보험회사가 등장하면서 보험 산업과 보험 관행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1921년 국내 최초 보험사인 조선생명보험이 설립된 이후 92년간 생명보험은 시대 변화와 경제 상황에 맞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1970년대 ‘20배 보장’ 재해보험 등장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보험사인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은 1979년 동아일보에 20, 30대 젊은이를 대상으로 1000만 원의 사망보험금을 지급하는 재해보험인 ‘청춘보험’ 광고를 게재했다. 당시 보험업계는 교통사고 등으로 갑자기 사망하는 경우 질병 등으로 인한 사망보험금의 20배를 지급하는 ‘20배 보장’ 재해보험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31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관영 한화생명 전속채널본부장은 “1980년대 들어 자가용 구입과 교통량이 급증하면서 재해보험 사망금도 줄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현재 재해 사망보험금은 질병과 노환에 따른 사망금의 2∼3배에 불과하다.
○ 1980년대 이후 보험상품 다각화
1980년대까지는 한국의 유난히 높은 교육열에 착안한 자녀 학자금 마련을 위한 교육보험이 큰 인기였다. 2000년대 들어 대학등록금이 폭등하면서 학자금 보험 상품이 점차 사라졌다. 1988년 해외여행 자율화가 되면서 해외여행 자금을 지원하거나 해외 유학자금 마련을 위한 보험 상품도 등장했다. 1980년대에는 연금보험 판매도 늘기 시작했다. 정부는 보험료를 3년만 납입하면 비과세 혜택을 주는 식으로 연금보험 가입을 독려했다. 현재 일반연금보험의 경우 10년 이상 보험료를 내야 비과세 혜택이 주어진다. 보험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은 연금상품의 비중이 각각 50%, 80%에 이르지만 한국은 15%로 낮은 편이다. 1990년 전후 푸르덴셜생명, ING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들이 ‘종신보험’을 들고 국내에 진출하면서 종신보험 상품 경쟁이 벌어졌다.
○ ‘보험 아줌마’에서 인터넷 판매로 진화
1980년대 후반 외국계 보험사가 진출하고 2003년 은행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방카쉬랑스’가 도입되면서 보험 상품 판매 방식에도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보험이 은행 예금과 펀드 등 다른 저축 상품과도 경쟁하면서 다양한 보험 상품이 등장했다. ING생명 등 외국계 보험사들은 대졸 남성을 설계사로 대거 채용해 전문성을 앞세운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면서 이른바 ‘보험 아줌마’ 중심의 설계사 문화를 바꿨다.
송치훈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보험 선진국의 발달 과정을 보면 사망보장 중심의 보험 수요가 형성된 시기에는 전속 채널이 지배적인 현상”이라며 “연금, 투자형 상품 등 자산관리 수요가 늘어나면 비전속 채널의 비중이 커지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한우신 hanwshin@donga.com·박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