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시 이론가 빌 힐리어 교수-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 내한 대담
빌 힐리어 교수(왼쪽)는 8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강단에 서는 비결을 묻자 “나도 모르겠다”며 웃었다. 도미니크 페로 대표는 좋아하는 도시를 묻는 질문에 “네팔에선 도시에서도 소를 만질 수 있다. 살아있는 무언가를 만지며 관계를 쌓아나가는 것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페로 대표는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 어반 디자인 2013’ 국제 학생 아이디어 공모전의 심사위원장을 맡아 방한했다. 공간의 사회학으로 해석되는 ‘스페이스 신택스(space syntax·공간구문론)’ 개념의 창시자인 힐리어 교수는 31일 페로 대표와 함께 특별 강연을 하고, 같은 시기에 열리는 스페이스 신택스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1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각각 이론가와 실무자로서 도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이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인사동 한옥 민가다헌에서 만나 대담을 나눴다. 힐리어 교수를 사사한 김영욱 세종대 건축공학부 교수(50·스페이스 신택스 국제학회 조직위원장·사진)가 진행을 맡았다.
▽페로=난 빌딩을 짓지 않았다. 대신 환경(landscape)을 만들었다. 난 캠퍼스와 거리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었다. 여대여서인지 캠퍼스에 감옥처럼 보호 장치가 많았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여성들은 감옥에서 보호받기를 싫어하지 않는가. 이 건물은 (학생과 교수와 학교 밖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접점이 됐다. 이제 박물관의 시대는 끝났다. 대학 캠퍼스가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8년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힐리어=사회가 발달할수록 사회병리학적인 문제들도 빠르게 퍼진다. 흥미롭게도 많은 서구 도시의 범죄율이 최근 감소하고 있다. 대개 실업률이 높으면 범죄율도 올라가는데 대단한 모순이다. 높은 실업률은 범죄를 양산하지만 훌륭한 공간과 건축적 유산은 이를 억제한다.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간을 연구해야 한다.
―행복한 공간을 위한 도시 전문가와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페로=건축이란 바느질처럼 관계를 만들어내는 예술이다. 건축가는 재단사처럼 봉합을 한다. 건축은 항상 맞춤복이며 맥락이 중요하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주변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한국에는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의 작품이 많은데 비난도 받는다. 특히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논쟁거리다.
▽페로=서로 다른 문화에서 성장한 건축가들의 작업이 한 장소에서 실현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요즘 중국이 그러하다. 중요한 것은 건물 자체보다 건물이 지닌 공간적 프로그램이다.
―한때 ‘디자인 서울’이란 모토로 서울시가 디자인 개혁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이상적인 도시를 위한 정치인의 역할은….
▽페로=정치는 짧고 도시는 길다. 건축가들의 이상이 실현되기도 쉽지 않다. 결국 해답은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도시 전문가나 건축가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힐리어=하고 싶으면 그냥 해버려라.
▽페로=레닌이 한 말을 들려주고 싶다.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라. 그걸로 충분하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