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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부전자전

입력 | 2013-11-01 03:00:00

세계한상대회 참석… 임창빈 창텍스트레이딩 회장과 아들 수혁씨
父 “일단 시작한다” 회사 29개 창업… 6개 업체 성공
子 “아버지 따른다” COO 박차고 새 사업에 도전




임창빈 창텍스트레이딩 회장(왼쪽)이 세계한상대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미국에 정착할 당시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다. 오른쪽은 ‘한상 2대’를 꿈꾸는 그의 아들 수혁 씨. 재외동포재단 제공

“길을 걸을 때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겁니다. 동양인은 TV에서나 봤지 눈앞에서 마주하기는 처음이었을 테니까.”

임창빈 창텍스트레이딩 회장(75)은 지난달 29일 세계한상대회가 열리고 있는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기자와 만나 40여 년 전 미국 조지아 주 돌턴에 정착할 당시의 기억을 꺼내놓았다.

돌턴은 세계적인 카펫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1960, 70년대만 해도 동양인은 찾아볼 수 없는 시골마을이었다. 낯선 피부색의 동양인은 경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나는 동양인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는 ‘바로미터’였습니다. 내가 잘하면 동양인 전체가 인정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시아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지요.”

임 회장은 돌턴에 카펫을 제작할 때 쓰는 풀을 만드는 회사를 차렸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이력을 살린 선택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주유소,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모은 3000달러에 잠깐의 직장생활 동안 번 돈을 사업에 투자했다.

그의 회사는 곧바로 카펫 제작업체들의 주목을 받았다. 시골마을이라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던 덕분이다. 게다가 무엇이든 적극적이었던 그의 자세 덕분에 고객이 점차 늘어났다.

하지만 임 회장은 “모든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지금까지 세운 회사는 모두 29개에 이른다. ‘가능성이 보인다면 일단 도전하자’는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이 중 성공한 것은 단 6개뿐이다. 그래도 그는 늘 ‘실패는 또 다른 성공의 자양분’이라고 믿었다. 이제 임 회장은 연 매출 1억 달러(약 1060억 원) 기업의 대표가 됐다. 현재 돌턴에서 생산하는 카펫의 약 70%에 임 회장 회사에서 공급하는 풀이 쓰인다.

임 회장의 기업가정신은 자녀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임 회장의 둘째 아들인 수혁 씨(44)는 다니던 회사를 지난달에 관두고 새 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세계한상대회를 찾았다. 매년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한인 경제인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사업에 필요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임 회장이 권유했기 때문이다.

수혁 씨는 최근까지 휴대전화 인증 서비스 전문 벤처기업 ‘폰팩터’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및 최고운영책임자(COO)였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친 뒤 2005년 폰팩터 설립자의 권유로 합류했다. 2012년 마이크로소프트(MS)가 폰팩터를 인수하면서 수혁 씨의 지위도 벤처기업 임원에서 MS 계열사의 CFO 및 COO로 바뀌었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직장 대신 도전의 길을 가기로 했다. 수혁 씨는 “아버지는 항상 ‘월급쟁이로 머무른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며 “맨손으로 지금의 위치에 오른 아버지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