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언론의 보도 내용은 편향성을 배제하고 사실에 기초해야 하며, 해설 기사도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해야 한다. 여론조사처럼 통계 기법을 이용한 정보의 경우,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을 때가 많다. 따라서 숫자가 포함된 정보를 언론에서 다룰 때에는 전문적 지식이 요구된다.
통계정보의 부적절한 사용을 경고한 문구가 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선의의 거짓말, 악의의 거짓말, 그리고 통계를 이용한 거짓말이 그것이다. 통계치가 뒷받침된 주장은 뭔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며 신뢰성이 높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설득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된다.
기사를 읽으면서 그 지수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해당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본 결과 대기업 중심의 기업가정신 지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지수 구성에 포함된 변수 중에는 경제 여건과 연관된 변수뿐만 아니라 각국의 18세부터 64세까지의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사업 착수 의사를 묻는 설문조사 문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 조사를 근거로 정부가 창업,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중소영세기업 등을 대상으로 정책과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기업가정신 고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이번에 보도된 기업가정신 지수는 대기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예로 통일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국민의 47.5%가 남북 간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보도되었다(동아일보 10월 30일자). 북한의 침략을 우려하는 국민이 이처럼 많다면 왜 일상생활에서 전쟁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 전쟁을 걱정해서 비상식량으로 라면이나 미숫가루를 비축하고 있다는 사람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전쟁 우려 때문에 집을 사지 않고 월세를 산다는 사람도 없다.
조사 결과가 틀린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전쟁을 얼마나 걱정하고 있으며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쟁 우려 수준’을 추가로 조사했어야 했다. 전쟁 가능성에 대한 한 개의 문항만으로는 국민의 본심과 다른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통계는 보여준다.
외국인들이 이 조사 결과를 접한다면 한국의 안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개성공단이 폐쇄되었을 때 외국인들은 한반도 안보를 우려해 한국 내 국제회의 참석을 취소하거나 외국인 유학생 중 일부가 자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당시 국민은 남북 간 경색을 우려하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이나 경제지표 등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북한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왔고, 그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공단 폐쇄 조치가 한반도의 긴장을 유발하기는 하겠지만 결코 전쟁으로 치닫는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현우 객원논설위원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정치경영학과 교수 quick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