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1970년대에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시각 생리학을 연구하던 윌리엄 러시턴 교수는 여인의 미모를 측정하는 단위로 헬렌(H)을 제안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인 ‘일리아드’에서 트로이 전쟁을 촉발시킨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렌(Helen)의 이름을 딴 단위다. 러시턴 교수는 영국 작가 크리스토퍼 말로의 ‘포스터스 박사의 비극’에 나오는 구절에서 미모의 단위를 착안했다. ‘이 얼굴이 전함 1000척을 띄우고, 저 높은 트로이의 성을 불타게 한 얼굴이란 말인가?’
배 1000척을 동원할 수 있는 미모가 1H다. 그녀 때문에 아버지, 오빠, 남편, 아들 등등 해서 건장한 남자 1000명을 전쟁터로 불러낼 수 있는 미모다. 1mH(밀리헬렌)은 배 1척을 동원할 수 있는 미모가 된다.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남자 1명이 만사 제쳐두고 싸우러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소박한 여성이라면 이 정도만 되어도 만족할 듯싶다. 음수(陰數)도 있다. ―1H은 배 1000척을 도망가게 만들 만큼 추한 모습이다.
이처럼 단위는 정하기 나름이다. SF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기획한 더글러스 애덤스와 존 로이드는 ‘셰피(sheppey)’라는 단위를 고안했다. 양(sheep)은 가까이에서 보면 지저분하지만 어느 정도 떨어져 보면 순수해 보인다. 곧 양이 지저분하지 않게 보이는 거리가 1셰피다. 1워홀(warhol)은 인터넷이나 방송에서 15분간 지속되는 명성의 척도이며, 1수염초(beard second)는 수염이 1초 동안 자라는 길이의 단위다. 이처럼 장난스러운 단위를 만드는 것을 측정조롱학이라고 한다.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고, 관리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비영리단체의 경영’이라는 저서에서 측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성인병도 각각 mmHg(혈압)와 mg/dL(혈당)의 단위로 측정할 수 있으니 관리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회의원의 막말도 개선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그들의 막말을 고치지 못한 것은 측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막말이 가장 심한 ‘김막말’(가명) 의원이 하루 동안 한 막말의 양을 ‘1김막말’이라는 단위로 정의하면 일정 회기 동안 어떤 의원이나 정당이 쏟아놓은 막말의 총량을 측정할 수 있다. 이를 분석하여 국회 윤리위원회에서 징계하거나 시민단체에서 경고한다면 국회의원의 막말이 크게 개선될 것이다. 미모의 단위가 될 만큼 아름다운 헬렌처럼, 막말의 단위로 아름다운(?) 이름을 영원히 남길 국회의원이 누구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