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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위 폭탄’ 적재불량 낙하물… 시속120km때 1초내 ‘꽝’

입력 | 2013-11-01 03:00:00

[시동 꺼! 반칙운전]<2>낙하물 사고 가상실험해보니




지난달 24일 경기 화성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본보 우경임 기자가 가상주행시험장비(VRDS)를 이용해 낙하물 사고 가상실험을 하고 있다. 적재 불량 화물차 뒤를 달리다 택배 상자가 떨어지자마자 충돌 사고가 발생해 화면에 ‘사고가 발생했습니다’라는 알림이 떴다. 화성=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끼익….”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로 검은색 그랜저를 몰던 중이었다. 갑자기 앞서 가던 트럭에서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80cm인 택배 상자가 뚝 떨어졌다. 급제동을 했지만 순식간에 택배 상자가 유리창 앞으로 날아들었다. 자동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날벼락 사고’로 평온한 도로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24일 경기 화성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가상주행시험장비(VRDS)를 이용해 편도 4차로 고속도로에서 적재 불량 화물차 뒤를 달리는 실험을 했다. 적재물이 떨어지면 운전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시속 120km △시속 100km △시속 80km로 시뮬레이터를 운전했다. 운전을 하는 도중 80km 속도로 달리는 트럭이 화면에 나오고 내 차와 트럭의 거리가 50m 안쪽으로 좁혀지면 택배 상자가 떨어지게 돼 있었다.

시속 120km로 달릴 경우 상자와 충돌하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시속 100km로 속도를 낮춰봤다. 역시 떨어지는 택배 상자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핸들을 미처 꺾기도 전에 바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라는 화면이 떴다. 차는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가상 주행이 아니라면 2중, 3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을 것이다. 조정일 자동차안전연구원 연구원은 “속도를 높여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100m 이상의 제동거리를 확보하지 않는 한 낙하물을 인식하더라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시속 80km로 달려봤다. 택배 상자를 발견하고 급하게 왼쪽으로 핸들을 꺾을 수 있었다. 속도를 낮추니 충돌 전까지 3초 정도 여유가 있었기 때문. 가까스로 상자는 피했으나 뒤에서 달려오던 빨간 자동차가 운전석 쪽에 충돌했다. 조 연구원은 “낮이라 속도를 낮춰 피할 수 있었지만 가시거리가 70∼80m인 밤에는 피할 방법이 없다”며 “뒤따르던 운전자가 아무 과실이 없어도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 우르르 쏟아진 양배추에 3중 추돌 사고


이처럼 화물차에서 물건이 떨어질 때 운전자들은 이를 피하려고 급히 핸들을 돌리거나 멈추려고 한다. 이때 중심을 잃고 앞차 또는 뒤차와 충돌해 대형사고가 일어난다.

2011년 10월 서울춘천고속도로 서종나들목(IC)에서 서울로 가던 지프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다. 2.5t 트럭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양배추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뒤따라오던 승용차 역시 급정거를 했지만 지프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승용차 조수석에 탔던 A 씨(56·여)는 갈비뼈와 척추를 크게 다쳐 장애를 얻었다. 지프차와 승용차 운전자도 다쳤다. 채소를 팔던 트럭 운전자가 채소를 실은 뒤 덮개를 덮지 않아 발생한 사고였다.

보행자도 안전하지 않다. 올해 4월 경남 김해시 한림면 국도에서는 4.5t 화물차에서 가스통 6개가 굴러 떨어졌다. 도로에 떨어진 가스통이 튀어 오르면서 거리를 걷던 B 씨(21·여)를 때렸고 결국 그는 사망했다.

고속도로 적재 불량 적발 건수는 지난해 8만7070건으로 최근 3년간 약 30%씩 급증하고 있다. 낙하물로 인한 고속도로 교통사고는 2010년 41건, 2011년 70건, 지난해 58건이 발생했다. 날벼락 사고에 대한 운전자들의 불안감도 크다. 화물차를 보면 ‘피해서 추월해야 한다’는 것은 운전 상식으로 통한다. 승용차들이 화물차를 피해 추월하는 과정에서 과속과 무리한 차로 변경으로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온라인 리서치기업 ‘두잇서베이’가 운전자 131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88.5%가 ‘적재 불량 화물차에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 법령 미비해 단속 어렵고 효과 떨어져

자칫하면 다른 운전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화물차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 화물차 적재함을 사면이 모두 막힌 박스 형태로 만들면 가장 안전하지만 설치 비용이 들고 적재 용량이 줄어들어 꺼린다. 물건을 싣는 데 시간도 더 걸린다. 이 때문에 일반 화물차의 적재함은 절반 이상이 칸막이나 지붕이 없는 완전히 개방된 형태다. 속도를 올리거나 차가 흔들리면 쉽게 물건이 떨어질 수 있다. 급회전, 급정거를 해도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해야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는 운전자가 많다.

모호한 법령 탓에 단속도 쉽지 않다. 도로교통법은 ‘화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덮개를 씌우거나 묶는 등 확실하게 고정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만 명시하고 있다. 운전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다. 단속에 대한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

처벌도 경미하다. 적재 불량으로 단속됐을 경우 현행 범칙금은 4만∼5만 원이다. 영국의 경우 5000파운드(약 853만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면허 정지 처분도 내릴 수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지만 미시간 주의 경우 500달러(약 53만 원) 이하 벌금을 물리거나 90일 이하 징역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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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완 교통안전공단 안전평가팀장은 “적재 불량 화물차가 2차 피해를 부르는 위험성에 비해 처벌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법령 개정에 대한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지만 속도는 더디다. 범칙금을 현재의 2배로 올리는 내용의 적재 불량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 개정안에는 ‘원목, 금속코일, 종이롤 등 원형 적재물은 하단에 고정목을 설치해 구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적재 방법도 담겨 있다.

화성=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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