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게임 잘 돌아가는 PC를 꾸미려면 어떤 그래픽카드를 써야 하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특히 AMD의 ‘라데온(Radeon)’ 시리즈와 엔비디아의 ‘지포스(Geforce)’ 시리즈 중에 뭘 사야 좋은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건 그렇게 만만한 질문이 아니다. 라데온과 지포스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그래픽카드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임에 따라, 혹은 그래픽 옵션에 따라 결과가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 시기의 ‘대세’를 타고 있는 그래픽카드는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라데온 HD2000 시리즈와 지포스 8 시리즈가 경쟁하던 2007년 즈음에는 지포스가, 라데온 HD4000 시리즈와 지포스 200 시리즈가 경쟁하던 2009년 즈음에는 확실히 라데온 시리즈가 대세였다.
이렇게 주도권이 오가는 것은 그만큼 양사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의미다. 발전된 신기술과 향상된 제조공정을 얼마나 빨리 투입했는지, 그리고 게임 개발사에 대한 지원을 충실히 했는지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 한때 한쪽이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해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경쟁사에서 신제품을 내놓으면 입장이 뒤바뀌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2013년 전반기의 상황을 보면 확실히 지포스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특히 지포스 600 시리즈의 인기가 높고 2013년 중순에 출시된 지포스 700 시리즈가 세대 교체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 9월, AMD가 신형 그래픽카드인 라데온 R7과 R9 시리즈를 발표, 역습에 나섰다. 한층 향상된 성능으로 게이머들을 유혹하고 있는 신형 AMD 라데온 R7과 R9 시리즈의 면모를 살펴보자.
3자리로 줄어든 모델번호 달게 된 신형 라데온
이번 신형 라데온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모델명의 변화다. 지금까지 나온 라데온 시리즈는 ‘라데온 HD 7790’, ‘라데온 HD 7850’과 같이 4자리 숫자의 모델번호가 붙었으나 신제품은 고급형 제품은 ‘라데온 R9’, 중급형 제품은 ‘라데온 R7’으로 구분하며 뒤이어 이후에 출시될 보급형 시리즈에는 ‘라데온 R5’라는 이름이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 지포스 시리즈가 GTX(고급형), GTS(중급형), GT(보급형)으로 구분되는 것과 유사하다.
모델번호 역시 4자리에서 3자리로 변경되었다. 2013년 10월 현재 정식 발표된 R9 시리즈는 라데온 R9 290X과 R9 280X, R9 270X이며 R7 시리즈는 라데온 R7 260X와 R7 250, 그리고 R7 240이 있다. 3자리의 모델번호만 보면 제품의 등급을 알 수 있으며, 모델번호 뒤에 X가 붙으면 붙지 않은 모델과 기능적으로는 유사하나 다소 성능이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GCN 아키텍처 계승했지만 성능과 기능은 향상
라데온 R7과 R9 시리즈의 GPU(그래픽처리장치) 기존의 라데온 HD 7000 시리즈에 처음 적용된 GCN(Graphics Core Next) 아키텍처(Architecture, 설계기반)를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최신 그래픽 기술인 다이렉트X 11.2를 지원해 한층 현실에 가까운 그래픽의 구현이 가능해졌으며, 풀HD(1,920 x 1,080)를 능가하는 UHD(4K, 3,840 x 2,160) 해상도에 최적화되는 등, 성능 면에서 한층 발전한 점이 눈에 띈다.
부가기능 면에서도 향상된 점이 제법 있다. 라데온 시리즈의 자랑거리 중 하나라면 모니터 3대 이상을 연결해 하나의 화면처럼 쓰는 아이피니티(eyefinity) 기능인데, 기존 제품은 특정한 포트를 이용해 아이피니티 모드를 구성할 수 있어서 다소 불편했다. 하지만 이번에 출시된 라데온 R9 시리즈는 이런 제약 없이 어떤 포트를 이용하더라도 3개 모니터로 화면을 동시 출력해 아이피니티 모드를 구성할 수 있다.
또한, 2개 이상의 그래픽카드를 조합해 그래픽 성능을 높이는 크로스파이어(Crossfire)의 구성이 한층 편해진 것도 눈에 띈다. 기존에는 크로스파이어를 구성하기 위해 반드시 각 그래픽카드를 별도로 연결하는 브릿지(bridge)가 필요했지만, 라데온 R9 290 시리즈는 브릿지 없이 메인보드에 꽂기만 하면 크로스파이어를 구성할 수 있다. 라데온 R9 290 시리즈 외의 제품은 아직도 크로스파이어 구성 시 여전히 브릿지가 필요하지만 향후에는 하위 제품에도 이 기능이 적용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이렉트X의 대항마 ‘맨틀’, 성공 여부는 지켜볼 일
이번에 AMD가 라데온 R9과 R7 시리즈를 발표하며 함께 선보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맨틀(Mantle) 기술이다. 맨틀은 그래픽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일종이다. API란 여러 가지 프로그램 규칙을 일련의 함수들로 규정하여 모아놓고, 개발자들이 쉽게 참조, 활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인터페이스(interface: 프로그램이나 하드웨어 사이에 사용되는 언어나 규칙)로 재구성한 것을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다이렉트X가 있다.
맨틀은 다이렉트X와 차별화되는 AMD 고유의 API다. 이를 이용해 게임을 개발하면 그래픽하드웨어의 성능을 한층 원활하게 이끌어낼 수 있으며 PC, 콘솔 등 여러 가지 플랫폼용으로 동시에 게임을 개발하기에도 용이하다는 점을 AMD는 강조하고 있다. 다만, 맨틀은 GCN 아키텍처를 적용한 AMD의 하드웨어에서만 호환되며, 무엇보다 이미 다이렉트X가 워낙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라데온 R7 260X와 R9 270X, 280X, 그리고 290X의 면모
이번에 IT동아에 도착한 제품은 라데온 R7 260X을 비롯해 라데온 R9 270X과 라데온 R9 280X, 그리고 라데온 R9 290X다. R7 260X와 R9 270X, R9 290X는 AMD의 레퍼런스(표준규격) 제품이고 R9 280X는 MSI의 ‘트윈 프로저 게이밍’ 모델이다. 하지만 이 제품도 내부적으로 레퍼런스의 규격을 따르고 있으므로 제품군의 본래 성능을 가늠해 보는 데는 문제가 없다.
탑재되는 메모리의 사양을 보면 그래픽카드의 등급을 가늠할 수 있다. 중급형 제품의 경우 대개 128비트 규격의 메모리를 탑재하며 256비트 메모리를 탑재한 제품부터는 고급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R7 260X는 2GB 용량의 128비트 GDDR5 메모리를 탑재했다. AMD의 권장 가격은 139 달러, 국내 판매 가격은 10만 원대 중~후반에 형성된 중급형 제품이다. 기존 라데온 HD 7790의 개량형이라 할 수 있는데, 게임 매니아가 아닌 일반인들도 충분히 구매를 고려할만한 가격대이고 PC방에서도 선호도가 높은 등급이라 향후 AMD의 주력 제품으로 기대된다.
라데온 R9 270X의 경우 2GB, 혹은 4GB 용량(제조사 선택)의 256비트 GDDR5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으며, AMD의 권장 가격은 2GB 제품 기준 199 달러다. 현재 국내 쇼핑몰에서는 20만 원대 중반에 판매하고 있다. 기존 라데온 HD 7870의 개량 제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어지간한 온라인 게임은 대부분 구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판매량이 제법 많은 제품군이다.
한 단계 위급인 라데온 R9 280X의 경우, 3GB의 384비트 GDDR5 메모리가 탑재된다. AMD 권장 가격은 299 달러이고 현재 국내 쇼핑몰 판매 가격은 30만 원대 중~후반에 팔리는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기존 라데온 HD 7970 GHz 에디션을 계승한 제품이라 할 수 있지만 가격은 확실히 낮아진 것이 매력이다. 제법 게임을 한다는 매니아들이 현실적으로 구매를 고려할 수 있는 상한선에 딱 걸린 제품이라 할 수 있다.
최상급 제품인 라데온 R9 290X의 경우 4GB의 512비트 GDDR5 메모리를 탑재하고 있다. 자메품이라 할 수 있는 라데온 R9 290과 비교하면 스프림 프로세서의 수와 클럭 수치가 약간 차이 나는 정도다. AMD 권장 가격은 549 달러인데, 국내 판매 가격은 60만 원대 후반에서 70만원 대에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상급 제품인 만큼 가볍게 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경쟁사의 최상급 제품인 지포스 GTX 타이탄의 권장 가격이 999 달러, 국내 판매 가격이 100만 원 초~중반 대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R9 290X의 가격 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평가다.
벤치마크 프로그램으로 측정해 본 성능
제품의 대략적인 특징을 살펴봤으니 이제는 성능을 직접 체험해 볼 차례다. 4세대 코어 i7-4770(하스웰) CPU에 8GB의 DDR3 메모리, 삼성 840 EVO SSD, 그리고 MSI B85M-P33 메인보드를 갖춘 윈도7 64비트 운영체제의 PC에 라데온 R9 시리즈를 장착해 성능을 시험해봤다. 그래픽 드라이버는 AMD 홈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카탈리스트 13.11 베타를 설치했다.
가장 먼저 해본 테스트는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테스트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3DMARK’ 구동이다. 이 프로그램은 해당 PC의 3D 그래픽 구현 능력을 테스트한 후 이를 수치로 알려준다. 설정값은 초기로 둔 상태에서 가장 많은 성능 부하를 일으키는 ‘Fire Strike’ 항목의 테스트 점수를 비교했다.
테스트 결과, 모든 시스템이 수준급의 점수를 기록했다. 특히 라데온 R9 290X의 경우 9269점을 기록했다. 참고로 3DMARK에 제시된 코어 i7-4770K / 지포스 GTX 타이탄 시스템의 점수는 9131점이었다. 라데온 R9 290X이 지포스 GTX 타이탄과 비슷한 성능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 성능 테스트 1 – 블레이드&소울
벤치마크 프로그램의 점수가 잘 나왔다 해도 실제 게임 구동능력은 이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다음에는 직접 게임을 구동하며 성능을 테스트해봤다. 가장 먼저 테스트 해본 게임은 MMORPG인 ‘블레이드&소울’이다. 이 게임은 온라인 게임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품질의 그래픽을 갖추고 있어 일정 사양 이하의 PC에서는 원활한 플레이가 어렵다.
화면 해상도는 1,920 x 1.080, 그래픽옵션은 모두 최상급인 5단계로 높이고 FXAA를 비롯한 모든 특수효과도 활성화한 상태로 테스트를 진행해보니 모든 제품이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특히 라데온 R9 290X의 경우, 블레이드&소울 게임 자체가 120프레임 이상의 프레임을 제한한 탓에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을 정도다. 이 제한이 없다면 130~140 프레임 수준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게임 성능 테스트 2 – 툼레이더
액션 어드벤처 게임인 툼레이더(리부트)의 구동 테스트도 해봤다. 이 게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주인공의 머리카락을 현실적으로 표현하는 그래픽 기법인 ‘TressFX’를 활성화했을 때 어느 정도로 원활하게 구동되느지의 여부다. 어지간한 PC에서 이 옵션을 활성화하면 평균 프레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정도라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번에도 역시 화면 해상도 1,920 x 1.080에 그래픽 품질은 최상급인 ‘Ultimate’으로 맞췄다. 이 옵션에선 TressFX 역시 활성화된다. 툼레이더의 벤치마크 모드를 이용해 측정해보니 R7 260X가 30프레임 이하의 결과를 보인 것 외에는 모두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한 성능을 발휘했다.
게임 성능 테스트 3 – 크라이시스3
마지막으로 테스트 해본 게임은 FPS 게임인 ‘크라이시스3’다. 현존하는 게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성능을 요구하는 타이틀 중 하나라 그래픽카드 성능 테스트 용으로도 애용된다. 특히 게임 시작 장면부터 화면 가득 특수효과가 연출되는 악천후 장면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하의 시스템이라면 게임 시작조차 힘들 정도다.
1,920 x 1.080 해상도에 모든 옵션을 ‘VERY HIGH’로 높이고 FXAA까지 활성화해 위에서 언급한 초반 장면의 프레임을 측정해봤다. 그 결과, R7 260X을 제외한 모든 제품들이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 물론 해상도나 그래픽 옵션을 한 단계 정도 낮추면 눈에 띄게 프레임이 상승하기 때문에 성능 테스트 목적이 아니라면 R7 260X도 크라이시스3를 플레이하기에 아예 부적합한 그래픽카드는 아니다.
소비 전력 측정
현재 PC에서 소비되는 전력을 실시간으로 표시하는 파워서플라이를 이용해 과부하 순간에 소모되는 전력 소모 수치도 확인해 봤다. 라데온 R9 280X와 라데온 290X의 소비전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긴 했지만 제품의 등급을 생각해 본다면 전력 소모가 심하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대개 최대 출력의 절반 정도 수준에서 사용했을 때 효율이 좋다. 이를 생각해보면 정격 출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파워서플라이라면 550~600W 수준의 제품으로도 충분히 라데온 R9 280X와 라데온 290X를 구동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성비’ 좋은 R9 280X와 290X가 특히 매력적
이번에 출시된 AMD 라데온 R7 및 R9 시리즈는 확실히 인상적인 성능을 갖췄다. 기존의 아키텍처를 개량한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실제로 성능을 테스트해보니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특히 R9 280X와 290X는 동급의 경쟁사 제품에 비해 가격도 확실히 싸기 때문에 제법 인기를 끌 것 같다.
한편, 엔비디아가 11월 중에 가격인하를 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가격 인하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라데온 R7 및 R9 시리즈의 등장에 영향을 받은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도 누군가 지금 기자에게 그래픽카드를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한동안은 라데온 시리즈의 구매도 생각해 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글 / IT동아 김영우(pengo@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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