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 0.7% 14년만에 최저… 체감물가는 상반기 5.4% 올라9월 소매판매 작년대비 1.5%↓… 기업이익, 고용-투자로 연결안돼가계로 온기 퍼지기엔 불충분
이렇게 수치만 놓고 보면 경제는 분명 나아질 조짐을 보이는 것 같은데 정작 국민들은 아직도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지표와는 별개로 도무지 살림살이가 나아진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정부도 당장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보다는 경기회복의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정책의 초점을 옮기고 있다.
○ 월간 수출 사상 최대
물가 안정세도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이날 발표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7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비록 물가수준이 너무 낮은 나머지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좀처럼 늘지 않는 서민 가계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그나마 물가라도 안정돼 있는 것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기지표들의 개선 흐름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경기는 여전히 한겨울이라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우선 소비자들이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다. 가계소득이 정체돼 있는 데다 경제 전망을 낙관하지 못하다 보니 빚어진 현상이다. 9월 소매판매는 백화점과 마트 매출이 모두 줄면서 1년 전과 비교해 1.5% 감소했다. 기업 수출이 전년 대비 7% 이상 늘어나는 추세와 확연히 대조가 된다.
물가 역시 지표와 체감 사이 괴리가 크다. 최근 한 민간연구기관의 설문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민의 체감물가 상승률은 5.4%로 지표물가 상승률의 4배가 넘었다. 공공요금, 집세처럼 피부에 와 닿는 항목들이 유난히 많이 오른 탓이다. 수출이 잘되고 증시도 호황이라는데 살림살이는 그대로인 현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경기 미스터리’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체감경기가 살아나려면 우선 내수가 회복돼야 하고, 기업들의 투자 확대에 따른 일자리 증가로 가계소득이 늘어야 한다. 하지만 올 3분기(7∼9월) 기업 설비투자는 77조555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5% 넘게 줄었다. 9월 사업체 종사자 수 역시 18만7000명 늘어나는 데 그쳐 전달에 비해 증가폭이 감소했다. 기업 이익이 늘어도 고용과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사내(社內) 유보만 쌓이면서 내수와 수출, 가계와 기업 간의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이다. 최근 방한한 국제통화기금(IMF) 연례협의단도 이런 맥락에서 내수 진작과 가계소득 증가를 한국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꼽았다.
회복세를 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경기둔화 국면이 2011년 이후 벌써 3년째 이어져왔는데 최근 한두 분기 반짝 좋아진 것으로 회복세를 체감하기는 무리라는 뜻이다. 가계부채가 1000조 원에 육박하고 주택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도 체감경기 악화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수출 및 실적 개선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는 데다 체감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는 “정부나 정치권의 경제 살리기 의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은 상황에서 가계가 지갑을 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