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고위공무원-장군-경무관 ‘별’들 비교해보니
별은 하늘에만 있지 않다. 기업에도, 정부에도, 군대에도, 경찰에도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는 ‘별’이 있다. 대기업의 임원, 과거 1, 2급으로 분류됐던 고위공무원, 군 장성, 경찰 경무관…. 많은 이가 우러러보는 선망의 자리에 오른 주인공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을 ‘조직의 별’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주에서 수많은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듯이 직장에서 별이라고 불리는 고위직 역시 순식간에 명멸하는 자리다. 수십 년간 외길을 달려 마침내 그 자리에 올랐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더 극심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뛰어야 한다. 때로는 문득 문득 상념에 빠져든다. “내가 만약 다른 직업을 선택했었다면….”
동아일보 취재팀은 대기업 임원, 고위공무원, 군 장성, 경찰 경무관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별’이라고 불리는 직위에 오른 이들을 만나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경로를 밟았는지, 업무환경과 보수는 어떤지, 다른 길을 선택한 고교 동창과 대학 동기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지를 들어봤다. 그리고 직종별 데이터를 종합해 여러 분야 별들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봤다. 》
▼ 조직의 얼굴… 건강-외국어교육 체계적으로 관리 받아 ▼
보통 사관학교 출신이 별을 달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25년에서 길게는 30년이 걸린다. 육군사관학교 동기생 가운데 10% 정도만이 별을 단다. 해군이나 공군의 경쟁률은 이보다 더 치열하다. 한국군의 전체 장성 수는 450명 안팎. 육군이 300여 명으로 가장 많고 해군과 공군은 각각 60∼70명 정도다. 해군 소속 A 준장(50)은 “전체 사관학교 동기가 160명 정도 됐는데 장군이 된 사람은 8명 정도에 불과했다”며 “별을 다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육군에 비해 해군 공군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같은 공직 내 고위관리자는 어떨까? 지난해 말 기준 중앙 공공기관 고위공무원단에 소속된 가급(실장급)과 나급(국장급) 공무원은 약 1100명. 고시 출신이 국장급에 오르려면 22년 안팎이 걸린다. 과거에는 2급(이사관) 또는 3급(부이사관) 가운데 일부가 국장이 됐는데 지금은 실장급 자리인 1급(관리관)과 함께 고위공무원단으로 통합 관리된다. 고위공무원은 1∼3급의 ‘계급’을 없앤 것으로 참여정부 때 고위공무원들의 성과관리를 위해 도입됐다.
7급, 9급에서 출발한 경우 30년 이상 근무해야 고위공무원을 노릴 수 있으며 그 비율은 극소수다. 박현숙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이 바로 이런 케이스다. 9급 공채 동기 중에 고위공무원이 된 건 그가 유일하다. 박 국장은 1975년 9급 공채로 입사해 2009년 5월 고위공무원이 됐다. 별이 되기까지 34년이 걸렸다. 그는 “너무 아래에서부터 시작해 위로 올라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노력했겠지만 나는 갑절의 땀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통 경찰대나 간부후보생 출신의 경우 25년을 근무해야 경무관이 된다. 경무관은 일반적인 경찰서장(총경)보다 한 직급 위의 자리다. 예를 들어 경찰청 본청의 수사기획관, 서울지방경찰청의 수사부장 등이 경무관이다. 경무관 정원은 40명이 안 돼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되는 건 회사별, 개인별로 시간차가 더 크다. 보통의 경우 입사한 뒤 20년이 기준이 된다. 최근에는 임원에 오르는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 입사 후 걸리는 기간도 짧아지는 편이다.
반면 임원이 되는 건 공무원보다도 좁은 문인 게 현실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250여 개 기업을 조사한 자료(2011년)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이 임원이 될 확률은 고작 0.8%. 1000명 중 8명만이 별을 단 셈이다. S그룹 김모 상무(48)는 “동기 100여 명 가운데 5명이 임원이 됐는데 다른 기수는 그보다 훨씬 숫자가 적다”며 “공직이나 군인 조직은 그래도 끈끈함이 남아있지만 대기업은 동기 사이여도 알게 모르게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 별의 밝기도 다 다르다
대부분의 기업은 임원의 연봉을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거의 모든 계열사 임원뿐만 아니라 직원들까지 연봉 계약 때 ‘공개 금지’를 조건으로 달고 있다.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임원 1년차의 경우 1억∼3억 원 정도의 연봉이 책정된다. 삼성전자처럼 실적이 좋은 회사는 많으면 연봉만큼의 성과급도 받는다. 계약을 갱신해 3년차 이상이 되면 연봉이 많게는 5억 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능력을 인정받은 고참 임원의 연봉은 10억 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
군이나 경찰, 중앙부처의 고위관리자는 같은 공무원 신분이라 처우가 비슷하다. 준장이나 경무관, 국장급 고위공무원의 연봉 수준은 9000만 원 안팎이다. 경찰청 A 경무관은 “대기업 임원이 된 동창들을 만나보면 확실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다”며 “그 친구들도 고민이 많겠지만 처우 부분에서는 공무원이 민간에 비해 낮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은 연봉뿐만 아니라 각종 혜택도 많다. 보통 배기량 3000cc 이상의 차량 및 유지비를 지원한다. 비서가 배정되는 경우가 많고 운전사는 임원 직급에 따라 다르다. 판공비용 법인카드는 기본이고 골프회원권을 주는 기업도 있다. 항공기 이용 때 비즈니스석 이상을 이용할 수 있고 각종 상해보험, 고액 건강검진, 외국어 교육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공무원의 경우 전용 사무실과 부속 직원이 배정되는 것이 전부다. 차량은 실장급에게만 지급된다. 업무 성격에 따라 판공비를 한 달에 50만∼100만 원 정도 쓸 수 있지만 경찰청 수사기획관처럼 보직에 따라 한 푼도 없는 경우도 있다. 해외출장 때 항공기 비즈니스석 이용은 가능하다. 고용노동부 A 국장(45)은 “고위공무원 중에서 해외출장을 가는 사람은 1년에 한두 명에 불과하다. 비즈니스석 이용도 ‘그림의 떡’인 셈”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B 경무관은 “최소한의 품위 유지나 경조사 등을 챙기는 게 힘에 부친다. 공무원 월급이 올라봤자 쥐꼬리만 한 수준인데 지출은 갈수록 늘어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현직에 대한 처우만 놓고 보면 대기업 임원이 별 중의 별인 셈이다. 그래서 임원들은 승진 이후 회사 동료와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에 많은 신경을 쓴다. 임원 승진 1년차인 S그룹 이모 상무(48)는 “처음에는 실감이 안 됐는데 어느 날 아내가 차린 밥상 메뉴가 바뀐 것을 보고 ‘임원이 됐음’을 느꼈다”고 했다. 회사의 지원 덕택에 업무 집중도가 높아졌다는 의견도 많았다. 또 다른 S그룹 최모 상무(47)는 “체계적인 건강관리를 받기 때문에 핵심 업무에 더 신경을 많이 쓸 수 있다”며 “사내외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고 인적 네트워크가 고도화되는 것도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 모든 별에는 그림자가 있다
별의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진한 법. 특히 대기업 임원이 그렇다. 이들의 경우 고액 연봉과 각종 혜택을 그간의 노고에 대한 보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앞으로 해내야 할 업무와 짊어져야 할 책임의 대가를 ‘선지급’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별을 달았다는 기쁨은 순간뿐이고 업무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임원이 많다.
2년 전 임원이 된 H그룹 김모 상무(51)의 출근시간은 보통 오전 6시 전후다. 오너의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매일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는 것도 아니다. CEO 입장에서 김 상무는 그저 수백 명의 임원 가운데 한 명일 뿐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원이 됐지만 이제부터는 임원들끼리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 임원 “실적이 바로 내 운명” 공무원 “가시방석 정규직” ▼
임원들 “조직에선 가장 빛나지만… 공무원들 만날 때는 ‘을’ 신세”
공직자들 후배에 밀리면 옷벗거나… 자격심사 탈락하면 직권면직
도덕성 요구에 말-행동 조심조심
그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출근하자마자 회사 관련 기사를 챙기고 직원들과 보고서 내용을 확인한다. CEO 대신 매일 보는 전무, 매일 보다시피 하는 부사장께 할 보고다. 점심은 이틀에 한 번꼴로 외부에서 먹는다. 거래처 약속이 많지만 가끔 ‘대관(對官)’ 작업차 공무원들을 만날 때도 있다. 기획파트에 있는 그가 굳이 대관 작업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고위공무원들과 계속 끈을 이어놓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 상무는 “임원이라도 서기관 사무관 등의 공무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을’의 신세”라며 “끈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공무원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귀가는 항상 늦다. 오후 10시는 기본이고 자정을 넘기는 경우도 잦다. 자녀의 얼굴을 일주일이 넘도록 못 본 적도 많다. 김 상무는 “회사의 일이 곧 개인의 삶이 되는 자리가 바로 임원인 것 같다”며 “회사의 운명과 동고동락한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지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건 괴롭다”고 말했다.
김 상무처럼 대기업 임원 대부분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성과에 따라 재계약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들을 ‘임시 직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그룹의 한 임원(52·전무)은 “내 얼굴이 곧 회사의 얼굴이고 내가 마지막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은 정말 상상 이상”이라고 토로했다.
대기업 임원이 ‘계약직’인 반면에 공무원은 ‘정규직’이다. 비록 보수는 대기업보다 못해도 공무원에겐 ‘신분 보장’이라는 장점이 있다. 당사자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는 대기업 임원 못지않다. 고위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높은 도덕성’에 대한 부담도 크다. B 경무관은 “내 말이나 행동을 보고 ‘쯧쯧, 경무관씩이나 돼서 저러니…’란 소리를 들을까봐 조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군 장성의 경우 정신적 압박이 더 크다. 해군 소속 B 준장(52)은 “장군의 경우 높은 도덕성은 기본이고 남다른 명예심, 국가와 군에 대한 충성심을 갖춰야 한다”며 “주변의 기대까지 생각하면 행동 하나, 말투 하나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고위공무원은 대기업 정도는 아니지만 성과에 대한 압박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는 보직을 받지 못한 고위공무원에 대해 수시로 적격심사를 벌일 계획이다. 부적격 판정을 받으면 직권 면직된다. 안전행정부 A 국장(53)은 “행정고시 출신의 경우 지금까지는 대부분 고위공무원에 올랐다. 하지만 3, 4년 뒤에는 동기 중에서도 못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뜨는 만큼 진다
“아! 드디어 났네요.”
10월 30일 오후 4시경, S그룹 이모 상무(52)는 인터넷에서 방금 전 발표된 CJ그룹 임원인사 내용을 본 뒤 혼잣말하듯 이렇게 말했다. 이 상무는 “우리 회사 인사도 아닌데 나까지 괜히 긴장되더라”며 멋쩍어했다. 그는 “이제 올가을 대기업 인사가 스타트를 끊은 셈”이라며 “승진한 임원들은 좋겠지만 그 자리에 없는 이들을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인사철을 앞둔 요즘 대기업의 분위기는 ‘살얼음판’ 같다.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속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임원 승진을 기대하는 이도, 해임을 피하려는 이도 피가 마르기는 마찬가지. 공직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새해 예산안이 통과하고 한숨 돌리는 순간 행정부처 군 경찰의 고위직 인사가 줄을 잇는다. 보통 새로운 정부 출범 1년을 맞을 때 인사는 의미가 크다. 한마디로 분위기 파악이 끝난 상황에서 이뤄지는 인사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군 장성, 경찰 경무관 등 1600여 고위공직자 가운데 일부는 그만두거나 자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난해 12월 7일 삼성그룹은 정기 임원인사를 발표했다. 부사장 48명, 전무 102명, 상무 335명 등 총 485명이 승진의 영광을 안았다. 승진 연한보다 빠른 이른바 ‘발탁 승진’도 74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그만큼 기존 임원이 예상보다 빨리 회사를 그만뒀다는 뜻이다. 새로 임명된 임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계약 연장에 실패하고 옷을 벗는 임원도 늘어난다. L그룹 김모 상무(49)는 “지금 가장 빛나는 별인 만큼 언제 소멸될지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중간간부일 때보다 불안감이 훨씬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요 대기업의 임원들은 보통 해임돼도 자문역이나 상담역 고문 등의 직함을 받고 일정 기간 회사의 지원을 받는다. 이 중 일부는 모기업의 협력업체나 중소기업에 재취업해 다시 현장을 누비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상당수는 특별한 일 없이 회사가 마련해준 사무실에서 신문을 뒤적이거나 TV를 보며 소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원은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곧바로 퇴출된다. 계급 문화가 강한 군이나 경찰에서도 동기 또는 후배가 먼저 승진할 경우 옷을 벗는 경우가 많다. 행정공무원은 당장 퇴출은 면해도 한직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다만, 공무원은 산하기관이나 민간기업에서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한다. 군 장성이나 경찰 고위간부 출신이 대형 로펌에 가는 경우도 흔하다.
대기업 임원들은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에 호감을 나타냈다. S그룹 한모 상무(48)는 “사회적 영향력이나 그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확률, 신분 보장 등을 감안하면 공직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군 장성들은 자신의 조직에 대한 믿음이 가장 강했다. 국방부 C 준장(53)은 “나는 군인이 천직이다. 다시 태어나도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아들에게는 권유하고 싶지 않다. 아들은 좀 더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딱딱한 조직문화의 영향 탓인지 경찰 간부 중에서는 교사나 여행가 같은 직업을 꿈꾸는 이들도 있었다.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은 대부분 ‘지금의 길을 다시 걷겠다’고 했다. 외교부 A 대사(59)는 “밖에서 볼 때는 외유 온 국회의원들 수발이나 드는 줄 알겠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고 강조했다.
▼ “내년을 기약 못해도… 자부심 하나로 후배를 이끈다 ” ▼
#1 공군 최영훈 준장 “백 없이 이 정도 왔으면 보람 있는 삶 아닌가요”
동아일보DB
그의 병과는 정훈. 공군본부 근무 때 무려 7년 4개월이나 참모총장 연설문 작성을 맡았다. “정훈장교 하면서 대령까지 진급했다. 보통 이쪽은 대령을 한 뒤 전역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군까지 됐으니…. 하늘이 주신 선물인 셈이다. 중령 진급 누락됐을 때 정말 그만둘 생각도 했는데, 그래도 ‘백’ 없이 실력으로 이 정도까지 진급했으니 보람 있는 삶 아닌가.”
성공적인 군 생활이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걸리는 게 있었다. 바로 ‘가족’. 그는 “집사람이 묵묵히 내조해준 덕분에 행복하게 근무했다”며 고마워했지만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은 감추지 못했다. “지금은 다 커서 결혼도 했지만 초등학교 때 2년마다 전학 다닌 것을 생각하면 미안하다. 정든 친구들과 헤어지고 다시 사귀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다. 당시 아이들이 일기장에 ‘군인인 아빠를 이해한다’고 쓴 걸 보고 짠했다.”
그의 고향 친구나 중고교 동창들은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제외하고 대부분 은퇴했다. 조직에서 현역생활을 하는 것은 최 준장이 거의 유일하다. “군인이 일반인보다 먼저 간다고 생각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현업에 남아 있었다. 이제 나도 그 길을 따를 거고….”
최 준장은 10월 31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11월 말이면 전역을 하고 예비역의 신분이 된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는 결정하지 못했다. 고민에 앞서 가족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군이라는 조직은 국가나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서비스하는 곳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을 가진다. 장군이 돼서 명예도 얻었고…. 물론 (다른 조직의 별들에 비해) 금전적이나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정신적 윤리적으로 충분히 보상이 된다. (전역하면) 군 교육과 관련된 글을 쓰고 싶다. 국방에 대해 인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글…. 인생 100세 시대 아닌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하하.”
#2 고용노동부 신기창 국장 “경력 발휘도 좋겠지만 남들과 다른 길 가고싶어”
“다시 태어난다면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은데….”
신기창 고용노동부 인력수급정책국장(52)은 퇴직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여러 별 가운데 한 명이다.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는 있지만 그는 관례와는 다른 생활을 꿈꾸고 있다.
보통 노동부 고위공무원 출신은 대학에서 강의를 맡는 경우가 많았다. 석좌교수 특임교수 같은 직함을 갖지만 사실상 시간강사나 다름없다. 기간도 2, 3년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무 성격상 노무법인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최근에는 대형 로펌을 선택하거나 기업체 사외이사를 맡는 이들도 있다.
신 국장은 “공직에 있을 때 쌓은 지식과 경력을 사회를 위해 쓰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평생 공무원 생활을 한 만큼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에 도전하는 것에 더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광주 출신인 그는 1980년 전남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입시에서 낙방한 뒤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다. 그 선택의 배경에는 지금의 부인이 있었다. “그때 집사람을 처음 만났다. 집안끼리도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게 된 집사람과 떨어지기 싫었다. 그래서 결국 눌러앉게 됐다.”
고시에 합격한 것은 1987년 행시 31회였다. 지금 부인과 결혼을 약속한 상태에서 ‘백수’ 생활을 오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도전한 고시였다. “당시 시험을 치를 때만 해도 공무원으로서 큰 뜻을 품지는 않았다. 내 인생과 아내를 봐서 번듯한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노동부에 들어와 공보담당관, 노사협력복지과장, 노사관계조정팀장 등을 거쳤다. 모나지 않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조직 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업무는 꼼꼼한 편이지만 융통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정권이 바뀌거나 장관이 교체되는 것과 상관없이 꾸준히 주요 보직을 맡았다. 2011년에 정책기획관으로 승진하면서 고위공무원이 됐고 지금은 인력수급과 청년고용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적어도 공직에 있어서는 무난한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였다. “실무자 시절 유난히 힘들게 한 상사가 있었다. 어느 조직이나 그런 사람이 있겠지만 지금 봐서는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도 있었다. 결국 두 번이나 사표를 쓰려고 했다.”
신 국장 역시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틋함이 있다. 그는 원래 아들만 하나였지만 현재 2남 1녀를 두고 있다. 2008년 1남 1녀를 입양했다. 이 아이들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서 부부의 자녀들. 노동부 내에서도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암으로 숨진 막내 처제의 유언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장래를 위해 자연스럽게 내린 결정이었다.”
신 국장은 26년을 공직에 머물면서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이 확고해졌다. 대기업 임원에 비해 보수는 적지만 신분이 안정적이고 군 장성의 일보다 개방적이다. 경찰처럼 연일 터지는 사건사고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된다. 반면 부담감도 커졌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비난을 받을 때 가슴이 아프다”며 “공직자 입장에서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3 대기업 전무 B씨 “실적 나쁜 임원뿐 아니라 잘나가는 사람도 몸조심”
“지금은 안 되는데….”
A그룹 B 전무(52)는 한참을 망설였다. 미리 약속된 만남인데도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대기업 인사철이 다가오면 어느 회사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특히 직원들과 달리 ‘단칼’에 날아갈 수 있는 임원들은 초긴장 상태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시기에 언론에 개인적인 인터뷰가 나오는 것은 백번 양보해도 회사 안팎에서 좋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잘나가는 임원이든 못 나가는 임원이든 상관없다. 실적이 좋은 임원이 기사에 나오면 ‘혼자서 튀려고 한다’고 할 것이 뻔하다. 실적 나쁜 임원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고….”
입사 23년 만인 2년 전 별이 된 B 전무. “처음부터 임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계속 살아남아 올라가다 보니 임원까지 왔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이때 팀원들의 도움이 중요하다. 실력 좋고 든든한 후배들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내 평가가 달라지니까. 그래서 임원이 되기 전부터 후배들과 직장 동료 이상의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노릴 후배들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터. 그 역시 인사철이 되면 예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회사 분위기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일단 임원이 되면 전무까지는 보장해줬는데 요즘은 임원 달고 1년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장급 후배들의 신경전도 훨씬 치열해졌다. 임원 자리는 한정돼 있는데 부장은 많으니까. 특히 외부에서 영입된 인물이 선임으로 오면 참 비참하다. 등 뒤에서 ‘누구 물먹었다며?’라는 말을 들으면 민망할 때가 많다.”
인사를 앞둔 대기업 임원들의 스트레스는 다른 조직의 별보다 훨씬 심해 보였다. 어쩌면 회사는 이미 그런 압박감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을 임원으로 뽑았을 것이다. B 전무는 “마음 같아선 당장 그만두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느냐”며 “그래도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라고 말했다.
■ ‘별’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사람만 되는게 아니고… 특별한 노력을 하면 누구라도…”
“별은 특별한 사람만 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면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가 밝힌 별이 되기 위한 ‘비법’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조 대표는 “오랜 직장생활 내내 진정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시간만 흐르고 결국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전자부품업체 일본전산은 신입사원 면접 때 임원이 되려는 꿈이 있는지를 꼭 물었다고 한다. 임원의 꿈이 없으면 뽑지 않았다. 조 대표는 “어느 직장이건 들어가면 별이 되려는 꿈을 가져야 한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고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자리가 없다”며 “좋은 CEO는 그런 사람을 구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임원의 조건’이란 책을 낸 그는 농협중앙회 상무, 강원도 정무부지사,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조 대표는 “별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올 4월 발생한 ‘라면 상무’ 사건을 예로 들며 “과거에는 별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리로 사람들에게 이해됐지만 지금은 밑에서 올려다보는 일종의 ‘표적’으로도 받아들여진다”며 “그만큼 더욱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제5의 탄생’이라는 책을 낸 증권솔루션업체 ㈜디알에프앤의 이문태 이사는 사춘기를 거쳐 성인이 되고 대학 입학 및 직장 생활의 시작을 각각 새로운 탄생으로 보고 임원이 되는 것을 다섯 번째 탄생으로 표현했다. 그만큼 인생에서 매우 큰 변화라는 뜻이다. 이 이사는 임원의 마인드를 연습하라고 주문했다. “신입직원은 물론이고 과장 부장도 ‘임원이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것인가’를 늘 염두에 둬야 한다”며 “임원으로서의 태도와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늘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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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별’ 취재팀>
▽정치부 조숭호 손영일 기자 ▽경제부 홍수용 박재명 기자
▽산업부 김용석 김지현 정지영 박창규 김창덕 기자
▽사회부 이성호 이은택 기자 ▽소비자경제부 권기범 기자
▽교육복지부 이샘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