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황광우 지음/318쪽·1만5000원/생각정원
자크 필리프 조제프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62년). 서구문명을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결합이라고 할 때 헤브라이즘은 예수의 사랑, 헬레니즘은 소크라테스의 지혜로 풀어낼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바쳐 ‘인류의 희생양 만들기 문화’를 고발했다는 점에서 영혼의 공명을 일으킨다. 생각정원 제공
게다가 소크라테스에겐 학설이 없다.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토대를 뒤흔들긴 했지만 만물의 근원과 작동원리가 무엇이라든가, 인간이 어떤 존재라든가 하는 구체적 이론을 남기지 않았다. ‘네 자신을 알라’는 표현도 델포이 신전의 경구를 인용한 것이다.
500명이나 되는 배심원 중 280명이 유죄를 선고하고 다시 만장일치로 사형을 판결한 배경엔 이런 요소가 작동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소크라테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국주의적 오만에 가득 찬 삶을 살다가 그의 경고가 현실로 닥치자 분풀이하듯 소크라테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저자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 아테네인들을 향한 한 편의 긴 고발문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미움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소크라테스는 자연철학 중심이던 철학을 윤리학으로 전환시켰다. 또한 우리의 삶이 논리가 아니라 역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를 제대로 살아 내려면 이성이 아니라 사랑에 의존해야 함을 온몸을 던져 입증했다.
소크라테스와 관련한 방대한 저술을 섭렵하면서 ‘단 한 권의 소크라테스전’이란 부제에 걸맞은 책을 국내 저자가 써낸 게 반갑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